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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순환출자금지는 기업 위한 규칙 /김진방

등록 2006-11-21 17:21

김진방/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김진방/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기고
회사 갑이 회사 을의 주식을 소유하고, 회사 을이 회사 병의 주식을 소유하고, 회사 병이 회사 갑의 주식을 소유하면, 세 회사 사이에 순환출자가 있다고 말한다. 물론 넷 혹은 그 이상의 회사들 사이에서도 순환출자가 있을 수 있다.

순환출자의 가장 단순한 형태가 상호출자다. 현행 상법은 모회사와 자회사 사이의 상호출자를 금지하며, 현행 공정거래법은 동일인이 지배하는 두 회사 사이의 상호출자를 금지한다. 이는 지배주주나 경영자가 회사의 돈으로 회사의 주식을 사들여서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상법과 증권거래법이 회사의 자사주 취득을 제한하고, 자사주의 의결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상호출자가 자사주 취득의 변형이듯이, 순환출자는 상호출자의 변형이다. 상호출자를 금지하면서 순환출자를 허용하는 것은 상호출자를 허용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현행 상법은 상호출자와 순환출자를 모두 금지한다. 이에 반해 현행 공정거래법은 대기업집단 소속회사의 출자총액을 제한함으로써 순환출자의 규모를 제한할 뿐이다.

근래 재벌그룹의 순환출자가 빠르게 증가했는데, 그 선두에 삼성그룹이 있다. 삼성카드 등이 삼성에버랜드 주식 84만주를 주당 10만원에 매수하면서 이들과 삼성생명 그리고 삼성전자 사이의 순환출자가 만들어졌다. 그 이전에 이건희 회장의 자녀들이 삼성에버랜드 주식 125만주를 주당 7700원에 매수했고,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주식 345만주를 삼성그룹 임원들로부터 주당 9000원에 매수했다. 삼성그룹처럼 황당한 순환출자는 아니지만 현대자동차그룹, 두산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동부그룹 등에서도 순환출자가 생겨났거나 확대되었다. 결과 30대 재벌그룹의 순환출자 규모는 지난 8년 사이에 11배로 증가했다. 이러한 순환출자는 대부분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거나 지배주주의 사익을 위한 것이며, 공정거래법의 상호출자금지 규정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열린우리당의 채수찬 의원이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마련했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순환출자 금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자 재정경제부와 산업자원부 그리고 열린우리당의 여러 의원이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은 오히려 출자총액 제한제도마저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름의 이유는 있다. 산업자원부는 투자 활성화를 내세웠고, 재정경제부는 기업부담 경감을 내세웠다. 그렇지만 순환출자가 투자일 수 없고, 순환출자 금지가 기업에 부담이 될 리 없다. 순환출자는 지배주주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주식 취득일 뿐이며, 이를 금지하는 것이야말로 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투자를 촉진하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타협론은 솔직하지만 고약하다. 출자총액 제한제도의 폐지와 재벌기업의 투자 확대를 맞바꾸자는 것이다. 재벌기업의 투자를 재벌 총수로부터 받아낼 대가로 여기는 것도 어처구니없는 일인데, 그것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회사의 돈이 재벌 총수의 지배력 강화에 사용되어도 좋다고 주장하니 말문이 막힌다.

동일인이 지배하는 회사들 사이의 순환출자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것은 규제라기보다 규칙이다. 경영권에 관한 규칙이며, 기업의 성과를 높이기 위한 규칙이다. 경영권은 경영을 잘하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하며, 무능한 경영자는 물러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배주주나 경영자가 회사의 돈으로 주식을 사들여서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래야만 기업이 투자도 배당도 하지 않고 현금을 쌓아두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참여정부의 옳은 판단을 기대한다.


김진방/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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