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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뜻말맛] 가와 끝 / 김수업

등록 2006-11-27 17:13수정 2006-11-27 17:18

말뜻말맛
“무슨 팔자인지 밀려오는 일이 끝도 가도 없네!” 이런 푸념을 듣는다. ‘끝’은 무엇이며 ‘가’는 무엇인가? ‘끝’과 ‘가’는 본디 넘나들 수 없도록 속뜻이 다른 말이었으나 요즘은 걷잡지 못할 만큼 넘나든다. 아니 넘나든다기보다 ‘끝’이 ‘가’를 밀어내고 있다. “그 광주리를 저쪽 마루 가로 갖다 두어.” 하던 것을 요즘은 흔히 “그 광주리를 저쪽 마루 끝으로 갖다 두어.” 한다.

‘가’는 바닥이나 자리나 바탕 같이 넓이가 있는 공간에서 가운데로부터 멀리 떨어진 데를 뜻한다. 그런데 ‘멀리 떨어진 데’가 반드시 얼마간의 너비를 지니고 있는 자리기에 ‘가장자리’라는 말을 함께 쓴다. ‘끝’은 시간을 흐르는 채로 두고 또는 도막으로 잘라서 맨 마지막, 흐르는 시간에 따라 벌어지는 일이나 움직임에서도 맨 마지막, 흐르는 시간처럼 길이가 있는 물건의 맨 마지막을 뜻한다. 나아가 공간도 어느 쪽으로든 마지막을 뜻하지만, 공간의 ‘끝’은 ‘가’와 달리 너비를 지닌 자리가 없어 ‘끄트머리’(끝의 머리)라는 말을 함께 쓴다.

그러니까 ‘가’는 공간에만 쓰고, ‘끝’은 시간에 써야 본바탕이지만 공간까지 넓혀 쓴다. 그만큼 ‘끝’의 뜻넓이가 ‘가’보다 본디 넓어서 조심스레 가려 써 버릇하지 않으니까 힘센 ‘끝’이 힘여린 ‘가’를 밀어낸다. 하지만 “그 광주리를 저쪽 마루 끝으로 밀어 두어.” 하는 말을 제대로 따르면 광주리는 반드시 마루 밑으로 떨어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끝’에는 광주리를 받을 만한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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