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종/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객원논설위원칼럼
노무현 대통령이 ‘참 좋은 주제’라고 평가하였다는 보고 안건이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지난 11월1일 보고한 ‘비전 2030 실현을 위한 기술기반 삶의 질 제고방안’이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성장우선 정책으로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였으나 국민 삶의 질과 같은 사회적 성장은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평가에 따라 과학기술부가 새로운 정책방향을 제시한 내용이었다.
이 보고서는 우리 국민의 삶의 질 수준이 낮은 원인으로 성장이 야기하는 환경오염, 자연재해, 사회적 재난, 저출산·고령화, 사회 양극화 등 이면의 문제 해결이 미흡한 점을 꼽았다. 이러한 현실 진단을 바탕으로 하여 정부가 발표한 비전대로 2030년까지 삶의 질 순위를 세계 60개국 중 10위로 이끌어 올릴 과학기술 정책의 내용과 방향이 담겨 있다.
부동산 정책과 노동 정책의 실패로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된 현실에서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국민들의 건강한 삶과 안전한 사회를 목표로 하는 정책 추진은 매우 환영받을 만하다. 그러나 과학기술부에서 제시한 새로운 정책의 실현 가능성은 여러 이유로 매우 낮아 보인다.
첫째, 시기적으로 너무 늦은 감이 든다. 각 부처의 삶의 질 관련 연구개발 정책을 포괄하는 ‘삶의 질 관련 기술 5개년 종합계획’ 및 연도별 세부 추진 계획을 수립하여 국가적 방향 설정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여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내년이면 참여정부는 끝난다. 정권이 끝나가면서 이제까지 해 온 일들을 마무리하기도 바쁠 텐데 부처별 종합계획과 국가적 가이드라인을 설정하여 새로운 정책으로 이끌어 내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둘째, 제안된 내용이 매우 단편적이라서 그 효과가 의문시 된다. 보고서의 실태조사 결과 중 식품안전 부분에서는 “시제이(CJ) 사태 등으로 수요가 급증한 식중독균 신속검출 기술개발”을 사례로 제시하고 있지만 몇몇의 식중독균을 신속하게 검출할 수 있다 하여 집단급식 사고나 식품안전 문제가 모두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고서에서 인용한 1997년 미국 고어 부통령의 ‘농장으로부터 식탁까지의 식품안전’ 대책에는 식재료 감시기능 강화와 조기경보제도 구축, 식중독 사고 대책 강화, 위해성 평가 개선, 식중독균 신속검출 기술 및 살균 기술 개발, 식품제조 및 유통공정 관리기술 개발, 식품 안전교육 등 다양한 정책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안에는 많은 새로운 기술개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원인별 복합적인 접근 없이 단편적인 기술개발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
셋째, 새로운 정책을 추진할 예산 규모 및 예산확보 방안에 대한 언급이 없다. 미국은 1996년 학교급식에 공급된 냉동딸기로부터 300여명의 집단 식중독이 발생한 후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4320만 딜러를 지원받아 특별대책을 시행하였으며, 이 예산 중 상당 부분이 시급한 관련기술 개발에 투자되었다.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는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대통령에게 칭찬받았다고 정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약자와 열악한 삶의 질을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담은 구체적인 정책시안을 만들어 다음 정권에서라도 시행하지 않을 수 없도록 탄탄한 기초 작업을 해놓기 바란다. 이러한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허황된 국가 비전 발표에 대한 비난을 무마하기 위한 끼리끼리의 잔치로 국민들은 받아들일 것이다. 뭐 하나 안심하고 먹을 먹거리가 없는 일상생활을 걱정해야 하는 우리의 ‘삶의 질’ 현실이 과학기술 정책에도 반영되기를 학수고대 한다.
김상종/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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