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여성가족부가 5년 동안 시행할 ‘건강가정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엔 이제까지 국가가 나몰라라 하면서 개별 가족에게 짐 지워온 가족복지 지원책이 두루 망라되었다.
장애아 가족에게 휴식을 주는 국가지원 서비스, 병든 가족을 돌볼 수 있는 가족간호휴직제, 배우자 출산 때 휴가를 쓸 수 있는 출산간호휴가제 등이다. 1인 가구, 한부모 가족, 재혼 가족, 결혼이민자 가족 등 외면해온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을 국가가 나서서 책임지겠다는 선포를 한 것도 의미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 계획의 어머니법인 ‘건강가정 기본법’의 전면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발목 잡힌 것이다. 지난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일부 위원들이 개정법안에 ‘사실혼에 기초한 공동체’가 가족의 범주에 포함돼 있다며 재검토를 결정한 것이다.
“사실혼을 (국가가)공인하고 장려해도 괜찮습니까?”(민주당 조순형 의원) “오다 가다 만나 가지고 산다고 해서 인정을 해주고 그런 것 아니오?(웃음)”(열린우리당 이용희 의원) “불륜, 내연관계도 인정한다든가….”(한나라당 최병국 의원)
의원들의 인식은 문제가 있다. 개정법안의 주목적은 사실혼 여부가 아니라 가족복지 강화다. 또 사실혼은 지금도 임대차보호법이나 대법원 판례 등에 따라 인정되고 있다. 반면 축첩관계나 중혼은 불법이라 ‘불륜’이나 ‘내연관계’는 새 법으로도 보장되지 않는다. 의원들의 보수성향을 탓할 생각은 없되 사실만큼은 바로 알았으면 하는 것이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젊은 동거부부보다는 나이 들어 동거를 결정한 비혈연 황혼동거 가정이 더 문제”라며 “고령화 위기인 일본 역시 최근 사실혼 노부부가 급증해 우리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발목 잡힌 건 사실혼 가정이 아니다. 가족을 돌보느라 피로에 지친 개별 가정의 구성원들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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