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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법과 원칙대로 하면 될 것을 / 이창무

등록 2006-12-04 18:08

이창무 한남대 교수·형사사법학
이창무 한남대 교수·형사사법학
기고
최근 경찰이 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 금지 결정을 두고 논란이 많다. 경찰은 지난달 도심 교통혼잡을 이유로 민주노총 집회를 금지통고 하더니, 이제는 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한 집회는 모두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집회 금지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가 명쾌하지 않다. 만약 무조건 금지하고 막아야 하는 집회라면 당연히 지난해에도, 올해 초에도 금지하고 막았어야 한다. 왜 굳이 지금 갑자기 이런 결정이 나왔을까? 집회·시위를 비난하는 언론보도가 잇따르면서 국민여론이 좋지 않게 형성되고, 정부·여당에서도 강력 대응을 천명하고 나서자 뒤늦게 엉거주춤 칼을 빼든 느낌이다.

집회결사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적인 권리다. 이를 폭력시위 전력이 있고 교통체증의 우려가 있다고 금지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은행 강도 전과가 있다고 해서 은행 출입을 금지하거나, 시험 부정행위 전력이 있다고 해서 시험 보는 걸 막는 게 정당하지 않은 것과 비슷하다. 또다시 강도를 하거나 부정행위를 한다면 당연히 가중처벌을 하면 될 일이다.

최근 집회 금지 결정과 같은 논란이 되풀이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법 집행에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법 심리학자 톰 타일러가 〈사람들이 왜 법을 지키는가?〉라는 저서를 통해 주장했듯이, 사람들은 ‘절차적 정의’가 확보되지 않으면 법을 지키지 않는다.

미국에서 한밤중에 차 한 대 다니지 않아도 교통신호를 준수하고 또 줄서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미국 사람들이 원래부터 법을 잘 지키고 착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법규를 준수하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게 당연한 것이고, 이를 어길 경우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듯이, 우리가 부러워하는 선진국의 집회시위 문화 역시 단시일 내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수백 년, 수십 년에 걸쳐 나름대로 법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많은 비용을 치르고 얻은 평화이고 질서인 것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집회 금지 결정과 같은 논란은 사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눈치 보고 잔머리 굴리지 않고 법대로 원칙대로 하면 된다. 경찰도 이제 그럴 때가 됐다고 본다.

순경 공채시험 경쟁률이 수십 대 일에 이르고, 대기업 대리로 근무하다가 순경시험을 보고 경찰관이 될 만큼 경찰에 대한 이미지도 좋아졌다. 선진국에서 사이버 수사기법을 배우기 위해 들어오고, 서울 방배동 프랑스인 영아살해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우리나라 경찰의 과학수사 수준 역시 상당하다. 이럴수록 경찰 스스로 원칙을 지켜 나가고, 경찰에 대한 신뢰를 쌓아 나가야 할 것이다. 정치권 역시 이제는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법과 원칙을 훼손하고 경찰을 볼모로 삼지 않았으면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지킬 것을 지키지 않아 오늘날 세상이 시끄럽고 사람들이 다치고, 돈 들어가는 일이 생긴다. 경찰만 해도 저 높은 곳의 눈치를 보지 않고 원칙대로 법대로 집회시위를 엄정하게 관리하고 법집행을 해왔으면 지금과 같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됐다. 이때는 이랬다가, 상황이 달라지면 또 바뀌니 신뢰가 쌓일 리 만무하다.

늦었지만 법에 보장된 대로 집회를 하겠다면 허용하고, 잘못하면 엄정하게 처벌을 하면 될 일이다. 문제가 있는 집시법 조항은 고치면 된다. 지금 당장은 조금 더 불편할지라도 원칙을 지키고 일관성을 지킨다면 분명 우리가 원하고 자랑할 수 있는 집회시위 문화를 갖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이창무 한남대 교수·형사사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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