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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땅이름] 여우골과 어린이말 / 허재영

등록 2006-12-06 18:57

땅이름
땅이름에는 우리 고유의 정신이 담긴다. 이런 정신은 토박이말 땅이름에 많으며, 작은 땅이름에는 토박이말로 이루어진 것이 많다. 더욱이 이러한 땅이름은 쉽게 바뀌지 않는 성질을 갖는데, 이런 성질을 보수성이라 한다. 땅이름의 보수성은 어휘뿐만 아니라 말소리에도 남아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여우골’ 발음이다. 강원 영서 지역에서는 이 땅이름이 ‘이윽골’(이때 ‘이’와 ‘으’는 합쳐서 하나의 소리로 내야 한다. 이런 소리는 ‘영감’을 ‘이응감’으로 부르는 것과 같다)로 발음된다. 그런데 ‘이’와 ‘으’를 합쳐서 소리를 내야 하니, 오늘날의 한글 표기로는 적을 방법이 없는 셈이다. 이렇게 표기 방법이 없는 땅이름이 오랫동안 전해지는 까닭은 땅이름이 지닌 보수성 때문이다.

그런데 〈훈민정음〉에는 이처럼 표기하기 어려운 발음을 표기하는 방법이 들어 있다. 〈훈민정음〉 ‘합자해’에는 아동과 변방의 말에 ‘ㅣ’가 먼저 나고 ‘ㅡ’가 나중 나는 발음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의’는 ‘ㅡ’가 먼저 나고 ‘ㅣ’가 나중 나는 발음이다. 따라서 ‘이으’를 적을 때는 ‘ ’로 적을 수 있다는 것이다. 〈훈민정음〉에서는 이런 소리가 국어에서는 사용되지 않으며, 단지 아동(어린이)과 변방의 말에만 간혹 있다고 하였다.

말은 사람들의 심리를 반영한다. 오늘날 말소리가 가벼워지거나 혀를 굴리는 소리가 많아지는 것은 외국어 교육의 영향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심리를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점에서 ‘여우골’에 남아 있는 〈훈민정음〉의 어린이말은 오랜 우리의 삶을 의미하는 셈이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국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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