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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평범한 간첩 / 김회승

등록 2006-12-06 18:58

김회승 논설위원
김회승 논설위원
유레카
1980년 여름 석달윤씨는 47일 동안 남산 대공분실 168호에서 지냈다. 한국전쟁 때 월북했다 간첩으로 남파된 고종사촌이 문제였다. 수사관들은 교대로 물고문을 했다. 발로 배를 마구 밟아 물을 빼내면 다시 머리를 욕조에 담갔다. 잠 깨는 데는 최고라며 볼펜 심지를 성기에 집어넣었다. 생전 보지도 못한 사촌 형을 만났다고 한 뒤에야 고문은 멈췄다. 같이 끌려간 친척은 풀려난 지 두달 만에 숨졌다. 이듬해 1월 안기부는 고정간첩 3개망 15명을 일망타진했다고 발표했다. 석씨도 그중 하나였다. 생계가 끊긴 가족들은 두달 동안 고구마만 먹고 지냈다. 이웃들은 ‘빨갱이 자식들’한테 밥 동냥도 하지 않았다. 18년 옥살이 끝에 가석방됐지만 여전히 공안당국의 요시찰 대상이다.

김익환씨는 4형제와 함께 전남 여천의 외딴 섬에 살았다. 1971년 9월 중앙정보부 여수출장소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조카딸, 제수도 함께 배에 실렸다. 한국전쟁 때 부역을 했던 고정간첩과 내통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5일 만에 풀려났지만 온몸을 몽둥이로 맞아 왼쪽 어깨가 내려앉았다. 두들겨 맞다 기절한 조카는 성폭행을 당했다. 청와대와 국회, 국가인권위원회, 법률구조공단에 수차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관련 기록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출범한 지 꼭 1년이 됐다. 위원회는 엊그제 ‘김익환 일가 고문·가혹행위’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피해자한테 사과하고 명예회복 조처를 취하라고 국가에 권고했다. 석씨와 김씨는 ‘평범한’ 조작간첩이다. 수많은 국가범죄 피해자 중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소수자다. 진실규명은 더디고 절망과 분노는 깊다. 진실화해위가 김씨를 첫 결정 대상으로 삼은 건 그래서 의미가 크다. 수많은 석달윤, 김익환 들이 신원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더는 기댈 곳이 없다.

김회승 논설위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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