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강/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객원논설위원칼럼
흔히 ‘정규직 기득권자’라고 지탄의 대상이 되는 대기업 노동자가 결혼한 지 10여년 만에 작은 아파트 한채를 마련하고 집들이를 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차 한 잔 마시는 시간에 그가 두런두런 말한다. 출근할 때 아내한테서 “여보, 일찍 들어와.” 그런 말을 못 들어본 지 꽤 오래됐다는 것이다. 요즘 일찍 집에 들어왔다가는 오히려 아내의 곱지 않은 눈총을 받는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일찍 퇴근해 들어왔더니 그의 아내가 “집안에 꿀 항아리라도 감춰놓은 거 있어? 왜 잔업도 안 하고 벌써 들어와? 해도 떨어지기 전에 …”라고 농담처럼 말하더라는 것이다.
그 노동자의 임금은 10여년 동안 산술적으로 몇 배가 인상됐겠지만 10여년 전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일찍 퇴근해 집에 들어오면 눈총을 주고받아야 하는 그 부부가 10년 전보다 더 인간답게 행복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임금이 인상돼도 노동자의 삶이 행복해지지 않는 이 기묘한 현상의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은 해체돼버린 한 재벌 부설 연구소가 <한국경제연구>라는 수백쪽짜리 보고서를 발표했을 때 ‘수구보수 언론’은 1면 머릿기사의 제목을 “소득 늘었으나 빈부격차 더 심해져”라고 뽑았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인상되는 것보다 노동하지 않는 고소득자들의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르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임금인상 투쟁을 통해 아무리 임금을 인상시켜도 갈수록 더욱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대기업 정규직 기득권자’조차 이러할진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대기업 임원이나 관리직 직장인들 역시 이 비정상적 구조로부터 탈출할 수는 없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과 불로소득자의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을 바로잡지 못하면 우리 경제는 희망이 없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은 당연히 철폐돼야 하지만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줄여서 비정규직과의 소득격차를 줄이겠다는 발상은 자칫 우리 경제를 회복할 수 없는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것이 경제학 교과서의 기초다.
“지나친 고임금이 한국 경제성장의 걸림돌”이라거나 “노동조합의 이기적인 임금인상 투쟁으로 기업들이 중국으로 도망가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발생한다”는 주장을 오랜 세월 동안 들어온 사람들에게 “임금인상이 경제에 유익하다”는 주장은 마치 매국노의 발언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대학 수업시간에 초청돼 왔던 조종사들이 두시간 넘는 ‘학생들과의 대화’를 끝맺으며 했던 말이 생각난다. “자본가들에게 맞서는 우리의 투쟁이 사회에 해롭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노동문제에 대한 수업을 한 학기 정도 듣고 나서야 학생들은 그 말에 겨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불행하게도 여론은 그렇지 않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노력하는 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 열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줄 때만 사람들은 비로소 노동운동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현대자동차 시무식에서 벌어진 일은 그래서 ‘유감’이다. 노사 합의의 신뢰를 무너뜨리거나 성과금으로 노동조합을 조율하려고 한 경영진에 잘못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잔혹한 수법으로 살인을 한 범죄자라도 똑같은 방법으로 사형에 처하지는 않는다. 노동운동에 대한 이해가 역사 속에서 올바로 자리잡혀 본 적이 단 한번도 없는 사회에서는 노동자들이 분노를 억누르고 참을 수도 있어야 한다.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옳으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 행동이 얼마나 옳은 영향을 끼치느냐이다.
하종강/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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