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승 논설위원
유레카
1945년 미국 최초의 핵실험에 성공한 과학자들은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뒤 자신들을 “인류의 파괴자요 죽음의 신”이라고 자책했다. 이들은 47년 전쟁이 끝난 뒤 원자력과학자협회를 만들어 <불리틴>이란 격월간 잡지를 내기 시작했고, 이 잡지의 표지에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 이른바 ‘핵시계’를 처음 공표했다. 핵전쟁으로 인류가 멸망하는 자정에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구종말 시계다.
이 시계의 시각은 전세계 핵무기 보유국들의 움직임과 핵실험, 핵무기 협상의 성공과 실패 등을 고려해 결정된다. 맨 처음 자정 7분 전에서 출발한 핵시계는 지금까지 17차례 수정됐다. 옛소련이 원자폭탄을 보유하고 미·소가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을 때는 자정 2분 전까지 다가갔다. 소련 해체와 독일 통일로 냉전 질서가 급격히 무너졌을 땐 자정 10분 전까지 물러났고, 미·소가 핵무기 감축에 합의했을 때는 17분 전까지 후퇴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물학 무기와 테러리즘 확산 등의 우려가 커지면서 2002년 자정 7분 전까지 앞당겨졌다.
5년 째 멈춰 있던 핵시계의 분침이 곧 움직일 모양이다. 원자력과학자회보가 “세계의 악화된 핵위협과 기상위협”을 이유로 조만간 지구 종말시계의 분침을 더 앞당길 것이라고 예고했다. 과학자들이 주목한 새로운 변화는 이란과 북한의 핵개발, 러시아의 핵물질 유출, 민간 핵발전 팽창으로 말미암은 기후변화 압력 등이다.
그러나 분침을 앞당길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이유는 강대국이 보유한 수만기의 핵무기다. 전세계에 수만기의 핵무기가 있고, 이 가운데 수천기는 언제든지 발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회보의 편집장은 언론에 이렇게 토로했다. “핵보유국이 태도를 바꾼다면 단지 몇 분이 아니라 몇 시간은 더 늦출 수 있다”고.
김회승 논설위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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