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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객원논설위원칼럼] ‘전문가 집단’을 쏜 석궁 / 김상종

등록 2007-01-22 17:48수정 2007-01-22 18:16

김상종/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김상종/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객원논설위원칼럼
전직 교수가 판사에게 테러를 가했다는 사건이 우리 사회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명문대학을 나오고 능력을 인정받던 학자가 벌인 충격적인 불법행위의 동기와 배경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1995년도 성균관대학교 입학시험 채점과정에서 출제된 수학문제가 잘못되었다는 지적에 대해 대학 당국의 편법처리와 해임 조처로 시작된 수학자 김명호가 겪은 지난 12년간의 긴 시련과정에서 대표적 전문가 집단인 학계 내부에서 벌어진 많은 일들이 납득되지 않는다.

첫째, 지원자 인생의 향방을 좌우할 수 있는 대학 입학시험은 공정하고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그런데 재판부도 인정한 성균관대학의 입학시험 관리의 오류를 대학당국은 어떻게 조용하게 처리하였는지 궁금하다.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킬 문제이므로 조용히 넘어가도록 학교재단이나 소수의 보직교수가 단합한 결과인가? 만약 그렇다면 진실을 마음대로 왜곡하지 못하도록 사립학교의 운영을 더욱 투명하게 만들 사학법 개정의 필요성을 김 교수가 온몸으로 입증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둘째, 입시문제 오류에 대한 검증은 전문가집단에 의해 쉽게 가능한데 왜 적시에 이루어지지 못했는가? 황우석 교수의 경우는 실험을 제대로, 정말로 하였는지 자료를 수집하여 검증하여야 하므로 많은 전문가와 시간이 요구되었다. 그러나 수학문제의 오류 여부는 논리적인 검증이므로 의지만 있다면 훨씬 쉽게 가능했을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문제에 대하여 첫 재판부가 요청한 전문가집단인 대한수학회나 고등과학원에서는 왜 답변을 하지 않았는지? 학회는 공식적인 답변을 회피하고, 44개 대학 189명의 수학과 교수들이 개인 이름으로 법원에 김 교수 지지의견을 내었다니 진리를 추구한다는 학자들의 모임인 학회의 구실은 우리 사회에서 과연 무엇인가? 누가 이들을 조종하는가?

셋째, 황우석 교수는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권위 있는 학술지에 새턴 교수를 끌어 들여 쉽게 논문을 싣고, 이를 근거로 국가로부터 천문학적인 지원을 이끌어 냈다. 이제는 명문대학의 교수 자리를 얻거나 국가로부터 대형 연구비를 받으려면 이런 잡지에 논문을 실어야 할 만큼 이들 학술지의 권위는 국내에서 대단하다. 그러나 97년에 이미 사이언스는 김 교수의 입시 문제 오류 지적이 옳다는 판정과 함께 국제적인 석학이 김 교수를 공개적으로 지지한다는 기사를 냈는데도 불구하고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김 교수는 그 혜택과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 학계, 과학계에서 인정하는 보편적인 가치와 권위는 과연 무엇인가?

수돗물에서 바이러스를 검출한 논문 발표(1999년)에 대해 서울시는 검사방법의 적합성 논쟁을 일으키며 나를 허위사실 유포로 형사고발하였다. 소모적인 논쟁을 매듭짓기 위해 한국미생물학회에 세명의 학회장이 바뀔 동안 매번 학회 차원에서 검사방법의 적합성에 대한 공식적인 판정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그 중 단 한명의 학회장만이 특별위원회의 검토 끝에 수돗물 오염 사실을 공인하는 학회의견을 냈다. 다른 두명은 묵살하였다. 이후 어렵게 나온 학회의 공식 의견조차도 환경부와 서울시는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경험으로 말미암아 나는 수학자 김명호가 겪고 있는 깊은 절망감을 공감할 수 있어 그만큼 가슴이 아프다.

문제는 앞으로도 또 다른 김명호 교수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신자유주의가 팽배하면서 기업경영식 대학 운영이 유행하고, 국가도 기업경영식으로 하겠다는 정치인이 유력한 대선 예비주자인 현실에서 전문가 집단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은 상대적으로 더 커지고 있다.

김상종/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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