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마을
만약 늑골들이 현이었다면, 그리고 등뼈가 활이었다면, 바람은 하나의 등뼈로 여러 개의 늑골들을 긁어대며 연주를 시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적막이라는 청중으로 꽉 찬 사막에서 뼈들의 마찰음과 울림은 죽은 늑대의 뼈나 말의 뼈와 공명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적막이라는 청중의 마음을 깊이 긁어놓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뼈의 음악은 그렇다. 아무런 악보도 없이 뼈로 뼈를 연주해 텅 빈 뼈들을 뒤흔든다. 청중으로는 적막이 제일이고 연주자로는 바람이 적합하다.
-시집 〈고비〉(현대문학)에서
최승호
1954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1977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대설주의보〉 〈회저의 밤〉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 등이 있다.
오늘의작가상,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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