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승 기자
유레카
세계보건기구(WHO)는 몇 해 전 언론의 자살 보도에 관한 원칙을 발표했다. 잘못된 보도 행태가 모방 자살,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를 부추긴다는 이유에서다. 내용은 이런 것들이다. 유명인의 자살은 될수록 지면과 단수를 최소화하라. 주검과 현장, 자살 수단의 사진을 싣지 마라. 복잡한 자살의 동기를 단순화하거나, 고통에 대처하는 선택이나 해결책인 것처럼 표현하지 마라.
유서 등을 통해 명백한 자살 동기가 드러나지 않을 때, 언론은 습관적으로 심리적 문제에 눈을 돌린다. 그러나 자살예방 단체들은 우울증과 같은 심리적 원인 진단은 과학적 근거가 없거나 미약하다고 강조한다. 의료산업이 지속적으로 ‘우울증=자살’이란 마케팅을 통해 상품화한 논리이며, 이로 말미암아 빈곤과 가치관 혼란 등 더 중요한 사회적 요인들이 은폐된다는 것이다. 나라마다 자살률 수치를 낮춰 보고하는 경향이 있기에 자살 통계도 신중하게 인용할 것을 권한다.
자살을 암묵적으로 이해하고 동조하는 듯한 보도 태도가 모방 자살을 부른다는 조사나 연구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지난해 이맘 때 유명 여배우가 자살한 뒤, 하루 평균 55건의 자살 관련 보도가 쏟아졌고, 그 다음달 월별 자살자 수는 1.78배 급증했다.
자살 보도의 전범으로 거론되는 게 커트 코베인 사건이다. 미국의 유명 록그룹 너바나의 리드 싱어인 그는 1994년 권총으로 자살했다. 젊은이들의 모방 자살 우려가 컸지만 정작 자살률은 오히려 더 낮아졌다. 당시 유족과 언론이 그의 약물 남용 문제를 적극 거론하며 모방의 매력을 떨어뜨린 덕분이었다.
며칠 전 젊은 탤런트가 또 숨졌다. 이번에도 언론은 미니 홈피에 남긴 글을 마치 유서인 양 보도하고, 모방 자살이 걱정된다며 몇 해 전 사건까지 들춰내 곱씹는다. 과연 베르테르의 방아쇠는 누가 당기는 걸까?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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