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종/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객원논설위원칼럼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발표한 ‘건강하게 수명을 연장하는 10가지 비결’ 중에는 ‘좋은 지역에서 살기’도 포함되어 있다. ‘좋은 지역’의 의미는 장수 지역인 일본 오키나와 섬과 평균수명 58살의 단명지역인 오염된 공업도시를 비교한 설명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좋은 지역’에 살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경기도 양평 자연휴양림 공기에서는 인체에 유해한 물질과 발암물질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 관악산에서는 여러 유해물질이 다량 검출되었다. 또한 양평에서는 관악산보다 건강에 좋다는 피톤치드가 13배, 서울역보다는 음이온이 170배 높았다. 이러한 산림청의 최근 조사 결과가 아니더라도 일상의 경험을 통해 서울의 공기가 살인적임을 우리는 느끼고 판단하고 있다. 서울 하늘을 뒤덮고 있는 매연 덩어리나 강남 대치동에서도 검출된 선진국 기준을 초과하는 발암물질이 수도권 4명 중 1명의 어린이가 고통 받는 아토피, 26%까지 높아진 미숙아 출산율과 같은 건강상 피해와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따라서 ‘좋은 지역’에 가서 살 이유는 충분히 있다.
양평처럼 객관적인 ‘좋은 지역’ 조건을 갖춘 지역에서 살려면 출퇴근·교육 등 여러 생활여건을 고려한 결정도 쉽지 않지만, 진짜 어려움은 건설업계의 부조리와 맞부닥치는 일이다. 전원주택 마련을 위해선 지어 놓은 집을 사거나 직접 짓는 방법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데 모두 만만하지 않다. 파는 집은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고, 섣불리 직접 짓다가는 패가망신하기 쉽기 때문이다.
집을 지어 본 사람은 ‘집 짓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도시락 싸 갖고 다니며 말리겠다’고 하거나 ‘집 세 채 지은 사람은 믿고 사귀어도 좋다’와 같은 속설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 건축분쟁 전문변호사의 진단으로는 전원주택을 짓는 사람의 대부분이 건축비용의 과다 청구, 공기 지연, 품질 문제 등으로 시공회사와 분쟁을 겪는다고 한다. 건축주가 공사비용을 또박또박 지급한다고 해서 공사가 원활히 진행되는 게 아니다. 시공회사가 지급받은 공사비를 다른 현장이나 다른 빚 갚는 데 써버려 공사가 늦어지거나 공사 품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인데도 ‘건축주는 죄인이므로 다 뒤집어써라’로 끝나게 된다고 한다. 평생 살 집을 짓는데 큰 소리 나는 것을 꺼리며 송사를 기피하는 건축주의 심리를 시공사는 탈법적인 수단을 동원하면서까지 이용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공정보다 많은 공사비를 받고도 장기간 공사를 중단한 채로 포기각서를 빌미로 더 많은 돈을 우려내는 게 시공사의 관행일 정도라고 한다. 건축주에게는 과다청구, 이중청구, 부당청구를 거침없이 하면서도 하도급업체에 대금 지급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법적 분쟁을 이용하기도 하여 결과적으로 몇 년씩 건축주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단다. 건축주 가족들은 평생 살아가면서 겪지 않아도 될 큰 수모와 고통을 경제적 손해와 함께 감내하게 된다. 짓던 주택이 불이라도 나서 차라리 포기라도 하면 좋겠다는 건축주의 한탄마저 나오는 실정이니 온전한 나라는 아니다.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수많은 소시민들이 조기퇴직 후 생활비도 줄이며 ‘건강하게 수명을 연장시키는 좋은 지역에서 살’ 꿈마저 무참히 짓밟히는 현실이 언제까지 방치되어야 하는가. 삶의 질 운운하는 공허한 정책의 남발에 앞서, 이제는 우리 사회의 이런 치외법권적인 영역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주기 바란다. 법과 사법기관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김상종/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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