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
유레카
‘에이블’(able)은 뭔가를 기대하게 만드는 영어 단어다. ‘할 수 있는’이란 뜻이니 그럴 만도 하다. 미국은 1950년대 후반 집중적으로 진행시킨 달 탐사 계획에 ‘에이블 우주 탐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앞서 1946년 태평양 비키니 환초에서 실시한 핵실험 계획의 이름도 에이블이었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초기 자동차 모델에도 에이블이라는 명칭이 등장한다. 이 단어가 영어에서 가장 흔한 접미사 가운데 하나인 것도 사용자들의 심리와 관련이 있을 법하다.
‘디스에이블’(disable)은 에이블과 반대 뜻의 동사이고, 과거분사형인 ‘디스에이블드’는 장애인을 가리킨다. 디스에이블드는 신체 손상을 강조하는 ‘임페어드’(impaired)나 특정 환경에 대한 대응 능력 부족을 부각시키는 ‘핸디캡트’(handicapped)만큼은 아니더라도 차별적 어감을 갖고 있다. 장애인은 특정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스에이블드 대신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differently abled person)으로 쓰자는 제안이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역시 디스에이블보다는 에이블 쪽이 낫다.
디스에이블의 명사형인 ‘디스에이블먼트’(disablement)는 6자 회담 논의의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다. 한국은 이를 ‘불능화’로, 북한은 ‘무력화’로 번역한다. 2·13 합의에서 처음 등장한 이 용어는 두 단계로 나눈 북한 핵 폐기(dismantlement) 과정의 앞 단계를 나타낸다. 정부는 이를 ‘원자로 시설은 그대로 두되 실질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조처’라고 설명한다. 핵심 부품을 빼내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황소를 거세하는 것과 같다’고 실감나게 비유했다. 북한 핵 문제의 특수성은 이처럼 ‘할 수 있는’ 것보다 ‘못 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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