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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두 회의’ 이름으로 인권탄압 말라

등록 2005-03-21 18:46

중국이 ‘두 회의’라 부르는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지난 13~14일 잇따라 폐막했다. 중국 최대의 두 정치 행사가 열리는 3월이면 베이징은 전국에서 올라오는 대표들을 맞기 위해 공무원과 군·경은 가로수 철책을 물걸레로 닦는 등 대청소를 벌인다. 당국은 이 ‘두 회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인사들까지 베이징의 거리에서 내쫓는다.

내가 겪은 일부터 얘기해보겠다. 지난달 22일 나는 지방에서 볼 일을 보고 있었다. 아침 일찍 휴대전화가 울렸다. 베이징대학 파출소의 후였다.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후는 “두 회의가 열리잖아요” 했다. 내가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요?”하자, 그는 “허허, 선생님께서 누구보다 더 잘 아시잖아요” 했다. 그의 말투는 공손했지만 나는 화가 났다. “난 잘 모르겠는데, 무슨 얘기요?” 후는 지금이 ‘민감한 시기’니 뭐니 하면서 내가 지금 어디에 있으며 곧 미국으로 갈 거냐고 물었다. 난 화가 났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이틀 뒤 그는 또 전화를 걸어와 내가 지금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당신이 그걸 묻는 확실한 법률 근거를 대지 않으면 앞으로 이런 질문에 답하지 않겠소!”라고 했다. 그는 “그러지요” 했다. 후의 태도는 늘 부드러웠다.

후는 내가 사는 동네를 관리하는 인민경찰이다. 그 또한 내가 사는 베이징대학 옌위안 아파트단지에 거주한다. 지난 4일 후와 그의 상사인 파출소 부소장이 내 집을 ‘방문’했다. 우리는 재미있고 유쾌하게 떠들었다. 집을 나서며 부소장은 내게 완곡하게 말했다. ‘두 회의’ 기간에 베이징을 하루라도 벗어날 때는 후에게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의 말이 공손했으므로 나는 그러마고 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서는 “만약 베이징을 떠나더라도 당신들에게 알려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는 소리가 맴돌았다.

부소장과 후는 자신들의 ‘방문’ 이야기를 글로 쓰지 말아달라고 했지만,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게 중국 공민에 이롭기 때문에 여기에 적었다. 이를 계기로 공안 파출소가 과연 어떻게 자신들의 관할구역을 ‘관리’하는 게 헌법에 맞고 실정에 맞을지 토론해 볼 기회가 생기지 않겠는가.

‘두 회의’ 기간에 파출소의 이런 각별한 ‘관심’을 ‘향유’할 수 있는 중국인이 나 한 사람뿐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이런 ‘관심’을 받는 사람들이 모두 나처럼 ‘예의바른 대우’를 받는 게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어떤 인사들은 무도하고 난폭한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그들이 내게 돌린 ‘관심’은 공손하고 예의바른 것이었지만 결국 내 공민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내 기분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두 회의’로 인해 공민권을 침해당하는 게 몇몇 ‘인사’들만의 일은 아니다. ‘두 회의’가 시작할 즈음이면 베이징에 올라와 있는 수천 명의 상방(상급기관에 억울한 일을 호소하는 개인·집단의 민원) 청원자들이 탄압을 받는다. 외국 보도에 따르면, 올해에도 상방촌(상방하러 온 사람들의 집단 주거지)과 천안문 광장, 국가 신방부(민원접수 처리기관) 앞에서 수천 명의 청원자들이 공안에 체포당했다.

이런 일은 이미 관례가 돼버렸다. 지난 몇 년 동안 공안 당국은 ‘두 회의’라는 이유로, 국경절이라는 이유로, 두 명절(원단과 설)이라는 명분으로, 6·4(1989년 천안문 사태)라는 이유로 베이징에서 상방 청원자, 농민공(농촌 호구를 지닌 도시 임시 노동자), 그리고 경찰의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을 잡아갔다. 나는 묻고 싶다. ‘두 회의’를 열려면 그냥 열지 왜 당신들의 경사를 인민의 재난으로 만드는가? 상방 청원자들을 잡아가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가? 한쪽으로는 인민대표대회를 열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을 잡아가는 건 도대체 뭔가? 정치 인격이 너무 분열된 게 아닌가? 저잣거리의 비유를 들자면, 창녀노릇 하면서 패방 세우는 짓 아닌가? 부끄럽지 않은가?

‘두 회의’, 국경절, 명절, 6·4라는 이유로 공민권과 인권을 침해하는 건 이미 정부의 관례적인 ‘공무’의 하나가 되었다. 이야말로 중국사회가 조화롭지 못한 근본적 원인의 하나다. 베이징의 언론들은 수년간 눈앞에서 발생한 이런 추잡한 일을 감히 보도하지 못했다. 이런 문제는 언론에서 ‘금기’다. 아무리 잘못된 일도 일단 한번 ‘금기’로 굳어지면 깨기 어렵다. 그러나 어떤 금기도 사실은 종이호랑이보다 더 약한 존재다. 일단 깨고 보면 금기란 아무 것도 아니다. 인류의 진보란 사실 인간의 머리를 짓누르던 온갖 불합리한 금기가 하나하나 깨져나가는 과정이었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십여년 또한 금기가 하나하나 깨져나가는 과정이 아니었던가.

몇 달 뒤에 닥칠 올해의 6·4와 국경절 때는 이런 공민권과 인권 침해가 다시 벌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늦어도 내년부터는 이런 뻔뻔스러운 공민권 침해가 ‘역사’의 옛일로 돌려지길 바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건 사실 농업세를 없애거나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것보다도 어렵지 않다. 고치기로 맘먹으면 바로 고칠 수 있는 일이다.

중국에서 이런 유형의 ‘금기’가 깨지지 않고 있는 건 언론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언론은 ‘의제 설정’의 기능이 있다. 그러나 언론 자유가 없다면 깨뜨려야 할 금기가 ‘의제’로 ‘설정’될 수가 없고 따라서 해결될 수가 없다. 중국의 많은 문제는 이제 해결할 때가 됐고 시기도 성숙했다. 그러나 언론 자유가 없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공론 석상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불합리한 금기가 중국을 한 해 더 지배하면 인민이 한 해 더 고생해야 한다. 어떤 불합리한 금기는 한 해 더 존재함으로 인해 많은 백성들이 생명을 대가로 치러야 할 수도 있다. 이건 너무 잔인한 비극 아닌가.

자오궈뱌오 베이징대 교수/언론학 jiaoguobiao2@si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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