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21 18:49
수정 : 2005.03.21 18:49
독도 문제로 일본에 대한 우리의 분노가 극에 달했던 지난 일주일 사이 일본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정부 당국자와 정치인, 경제인, 학자, 언론인 등을 두루 만나면서 ‘역시 일본은 가까워지기 쉽지 않은 나라’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두 나라 사이에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독도 문제와 역사 교과서, 과거사 문제 등에 대한 일본 정부와 일본인들의 인식 수준이 너무 낮고 편협했기 때문이다.
독도 문제만 해도 그렇다. 우리에게 독도는 법적으로나 실효적으로 한국 영토임이 재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백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우선 독도 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다. <마이니치신문>의 기쿠치 데쓰로 논설위원장은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이름)에 별 관심 없다. 다케시마에 관심 있는 일본인은 아마 전체의 1~2%밖에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일본 정부나 정치인들이 공식적으로 이런 식의 태도를 취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자민당사에서 만난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대리는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다케시마가 일본 땅이라는 종전 이후 주장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고 분명하게 못을 박았다. 외무성 당국자는 물론, 야당인 민주당의 오카다 가쓰야 대표나 그 밖의 자민당 의원들, 일본 언론인들도 영토 문제에 관한 한 일치된 목소리를 냈다. 자민당의 야마모토 이치타 참의원 의원은 “한국 쪽에서 본다면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경위와 배경이 있을 것이고, 일본도 나름대로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는 근거가 있다”며, 이런 인식차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도 문제에 대해 일본으로부터 공식적인 양보를 받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독도 문제가 불거진 뒤 두 나라의 대응 방식도 큰 차이를 보였다.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을 통과시킨 뒤 한국에서는 거센 반발이 일었지만 일본에서는 겉으로 보기에 대단히 조용했다. 우파로 알려진 아베 신조마저 “한-일 간에 다케시마 문제가 불거졌다고 해서 이 문제에 반응해 이렇다할 행동을 일으키는 사람은 극히 일부 우익들말고는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시마네현에 대한 일본 중앙정부의 통제력에 대한 부분도 우리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자민당의 고노 다로 중의원 의원은 “시마네현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국가가 제재를 가할 수 없다”며 “시마네현 자체는 외교권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 같은 것을 제정하는 일 외에 다른 일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케시마의 날’이 제정되든 안 되든 독도를 둘러싼 문제는 아무런 변함이 없다는 식이었다. 우리나라로서는 간과할 수 없는 시마네현의 조례 제정에 대해 애써 무시하려는 자세가 역력했다.
역사 교과서 문제도 마찬가지다. 아베 자민당 간사장 대리는 “일본은 국정교과서 제도가 아니다”라며, “검정에서 통과한 교과서를 각 지자체의 교육위원회가 채택 여부를 결정하는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심지어 “자민당 입장에서 볼 때 교과서 중에는 상당히 좌익적인 교과서도 많지만 그런 교과서라도 검정만 통과되면 각 교육위원회가 채택 여부를 결정한다”며, 교과서 내용에 대해 정치적으로 일체 간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시스템이 잘못된 시스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까지 말했다. 이웃나라에 대한 일본인들의 역사 인식의 한계를 절감케 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도 너무나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야당인 민주당의 오카다 대표는 “피해를 본 나라는 그 피해를 쉽게 잊을 수 없지만 가해자는 잊고 싶어한다”고 말하면서 “국가 대 국가의 약속인 한-일 기본협정으로 과거사는 일단락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협정에 문제가 있다면 일본에 말할 게 아니라 한국 국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일본 정부와 일본인들은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계속 강조했다. 옳은 말이긴 하다. 하지만, 일본이 상대방 처지를 깊이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는 한 정상적인 한-일 관계는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도 일본을 규탄만 할 게 아니라 한국에 대한 일본의 인식 수준을 정확히 파악한 뒤 이를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지 냉정하고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정석구 논설위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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