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기/광주교대 교수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3불정책은 언뜻 보면 갑작스럽게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것 같지만 실은 일부 언론과 관련 단체들의 지속적인 문제삼기 노력의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서울대와 사립대학총장협의회를 앞세운 많은 언론은 3불정책이 대학발전의 암초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고, 교육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입장을 바꿀 수 없다고 거듭 천명함으로써 우리 교육이 또 다른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바람직한 대안은 없는 것일까?
최근 <유에스에이 투데이>에는 미국 브라운대학의 입시처에 근무하던 윌리암 케스키가 기고한 ‘대학입학은 보드게임’이라는 기고가 실렸다. 그에 따르면 외부 사회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스포츠선수, 동문과 재직중인 교수 자녀, 거액의 기부금을 기부할 가능성이 있는 가정의 자녀 등을 위해 마련된 신입생 자리의 비중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그는 몇해 전에 세계 여러 나라 명문대학의 신입생 선발기준을 비교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했는데 미국 명문대학은 구체적 기준은 대외비라며 자료를 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은 사회가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 기준에 의해 학생을 선발할 자율권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하여 사회 계층이 고착된 서구 선진국과 신흥 국가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돌이켜볼 때 입시와 관련한 대학 자율의 범위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 ‘가족이 대학발전기금 모금 사무실에 트럭으로 돈을 실어올 잠재가능성이 있는 학생’을 포함하여 외부에 명확히 밝히기 꺼려하는 기준으로 학생을 받아들이려는 대학 당국의 욕망과 고충을 줄일 장치는 필요해 보인다. 만일 외국 대학처럼 우리나라 대학들도 다양한 기준을 통해 선발한다는 명분 아래 뒷문을 점점 넓혀간다면 중산층 이하 저소득층 가정의 교육열이 크게 줄어들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아랫목은 타들어갈 정도로 뜨겁지만 윗목은 고드름이 맺혀 있는 많은 나라와 달리 그래도 우리의 온방이 고루 뜨겁도록 유지해주던 연료의 하나는 다름 아닌 부모의 배경이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최대한 막아온 대입제도와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게 한 장치였다.
우리 국민은 다른 국민에 비해 공평성 기준에 민감하여 교육열을 유지하는 순수연료에 약간만 불순물이 섞여도 윗목의 교육열이 급속히 냉각되거나 아니면 강한 소용돌이가 일게 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대학의 학생선발권 논쟁을 진행하기를 기대한다. 소외계층을 껴안지 못할 때 그 사회는 파국을 맞게 될 것이라는 프랑스 석학 자크 아탈리의 경고를 우리사회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기여입학제와 고교등급제는 막는 것이 타당하다.
이와 함께 교육부는 3불정책을 비판하는 대학의 주장 중에서 의미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를 살펴야 한다. 수능시험의 변별력이 줄어들면 대학이 새로운 기준을 사용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본고사 불가’라는 지침을 마련했으나 이는 이미 무의미해졌다. 대학이 심지어 영어로 논술을 보는 상황에서 이를 고수하겠다는 것은 큰 의미를 없다. 수능의 변별력을 대폭 늘리는 것이 본고사 문제를 완화시키는 대안이 될 것이다.
이제는 온 국민의 관심사인 대학입시제도에 대해 ‘국민대토론회’를 열 시점도 되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교육 수준이 높고 깨어 있는 사람이 많은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모으면 서로가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는 제도를 도출해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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