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
유레카
노무현 대통령은 다른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기 어려울 것 같아 자신이 나섰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그가 길게 보고 정권 재교체 포석을 하고 있다는 설이 있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더라도 차별성 부각이 쉽지 않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은 노무현 정부가 끝내버렸고, 6자 회담이 진전되는 와중에 대북 강경책을 취하기도 쉽지 않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와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등 한-미 동맹 재편 내용을 되돌리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새 정권은 초기부터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그사이 개혁·진보 세력은 정권 탈환의 기반을 넓혀간다.”
농담 같은 시나리오지만, 무리하게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한 이유가 잘 납득이 되지 않으니까 이런 얘기까지 나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분명한 자유무역협정 전략을 갖고 있다. 첫째, 높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상품무역 자유화뿐만 아니라 서비스·투자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개방을 추구한다. 둘째, 미국 제도와 맞지 않는 상대국 규제·제도의 변화를 요구하는 등 규범을 중시한다. 셋째, 이스라엘과의 협정처럼 외교안보적 목적 달성의 한 수단으로 활용한다.(‘자유무역협정의 다양성과 우리의 선택’, 〈한국형 개방전략〉) 결국 미국과 일체가 될 것을 상대국에 요구한다는 얘기다. 이는 미국-유럽연합, 미-일 자유무역협정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이런 전략은 당연히 싱가포르·이스라엘·오스트레일리아처럼 경제 규모가 비교적 작고 미국화를 지향하는 나라에 잘 통한다. 그런데 세계 10위권 경제력을 가진 한국이 먼저 협상을 제안했으니 미국으로선 불감청 고소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화가 과연 우리 국가전략이 될 수 있을까.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쉽게 강자에 기대려는 건 아닌지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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