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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객원논설위원칼럼] 연금 개혁의 세가지 열쇠 / 이태수

등록 2007-04-09 17:14

이태수/꾳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이태수/꾳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객원논설위원칼럼
지난 2일 우리는 국회에서 한편의 블랙코미디를 보았다. 두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모두 부결된 상태에서 오로지 노인들의 표를 의식하여 기초노령연금법안만 통과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사가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대역전의 실마리가 제공되었듯, 이런 희극적 결과를 낳은 뒤에야 연금개혁 동력이 오히려 지금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우리의 연금(年金) 제도를 연금(軟禁) 상태에서 진정 해금(解禁)시킬 기회가 다시 온 것이다. 그렇다면 그 해금의 열쇠는 무엇인가?

가장 먼저 인식해야 할 것은 기본적으로 연금개혁은 ‘표를 얻는 과정’이 아니라 ‘비난을 회피하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연금개혁은 정부나 집권세력의 독자적 노력으로 이뤄내기는 어렵다. 오히려 비난을 분산하기 위한 사회적 대화가 필수다. 따라서 첫번째 해금의 열쇠는 사회적 합의 정신을 복구하는 일에 있다. 연금개혁에 성공한 나라들의 공통적인 요소가 바로 사회적 합의 절차를 거친 점이라는 국제노동기구(ILO)의 지적도 상기할 만하다.

현재처럼 불안한 다수당 구조, 국회의 정책 생산 능력의 미비, 정부의 편협한 시각, 일정한 발언권을 지니고 있는 가입자를 대표하는 노동·시민단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소수 동조세력을 규합하여 과반수를 겨우 넘기려는 발상은 정치공학에 물든 사고에 불과하다. 연금개혁을 표 대결을 통해 결정짓자는 발상 자체가 잘못되었다. 기존 안을 조문만 바꾸어 내놓는 구태를 그만두고 가입자 단체까지 포함된 사회적 합의의 테이블로 나와 일치된 결론을 만들어 국민의 불안감을 씻어주어야 한다.

이때 지루하기만 한 사회적 합의의 과정에 드는 시간이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안과 한나라당-민주노동당-가입자 단체 ‘공조안’ 사이의 틈은 그리 크지 않다.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기초연금제에 동의하였으나, 전체 노인인구 80퍼센트에게 오는 2018년까지 평균소득 10퍼센트 수준의 기초연금을 지급하자는 공조안의 내용에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재원조달 불가로 맞서 있다. 따라서 해금의 두번째 열쇠는 재원조달 가능성의 확보에 있다.

탄력성이 매우 떨어지는 우리 재정구조에서 기초연금의 신규재원 확보가 쉬운 일은 아니다. 결국 증세가 아니라면 연금기금을 활용하는 방법을 신중히 고려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사실 연금기금은 가입자가 은행에 넣어둔 사적인 예금잔고가 아니라 공공의 사회기금이다. 그리고 연금급여에 대한 책임은 소멸되지 않는 한 엄정히 정부에 있다. 잘못 설계된 처음의 연금제도 때문에 연금기금은 2030년대 중반 국내총생산(GDP)의 60퍼센트 수준까지 쌓였다가 그 뒤 단 10년 만에 ‘잔고 제로’로 급격히 소진된다. 이로써 발생할 거시경제의 충격과 혼선은 기금고갈로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전가시키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이다. 이것이 국채 형식으로 기금의 일정분을 기초연금제 재원으로 사용하는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한 절대적인 이유다.

마지막 하나. 사회적 대화를 조율하는 일을 담당할 주체는 정치적, 정략적 목적을 의심받아서는 안 된다. 연금개혁의 성과로 정치적인 수혜를 볼 수 있는 특정인이나 특정세력을 위해 협상 마당으로 나올 정치집단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를 통한 연금개혁을 조율할 적합한 주체를 세우는 것이 연금 해금의 마지막 열쇠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지만, 우리에겐 연금개혁을 이룰 마지막 희망의 달이기도 하다.


이태수/꾳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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