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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물먹다’ / 곽병찬

등록 2007-04-11 17:41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 논설위원
유레카
일제는 1937년 7월 중-일 전쟁을 도발하기 7개월 전 조선사상범 보호관찰령을 제정했다. 그리고 전쟁 도발 후 이른바 시국대응전조선사상보국연맹을 결성했다. 사상범을 사찰 대상에서 일제 정책에 부역하도록 하는 조처였다. 한창 확전되던 1941년엔 사상범을 집단으로 격리할 대화숙이란 것을 만든다. 이런 조처는 사상범 전시관리 계획, 곧 ‘평상시 철저히 관리하고, 유사시 처리한다’는 지침을 따른 것이었다.

일제의 계획은 갑작스런 항복으로 ‘관리 단계’에서 그쳤다. 그러나 ‘처리’는 광복 뒤 동족이 집행한다. 이승만 정권은 48년 12월 국가보안법 시행에 따라 국민보도연맹을 결성했다. 전향자를 보호하고 지도한다는 뜻으로 그렇게 이름 붙였지만, 일제의 사상보국연맹 혹은 대화숙이나 다를 게 없었다. 사상범에겐 전향 기회를 준다며 참여를 종용했고, 말단 행정조직엔 할당량을 강제해 무고한 사람들까지 참여시키도록 했다. 덕분에 연말 보도연맹원은 무려 30만여명에 이른다. 보도연맹은 정권의 요구에 따라 북괴 정권 반대, 노동당 봉쇄 등의 깃발을 걸고 반공전선의 전위에 섰다. 실제 보도연맹은 남로당 하부조직을 와해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6·25가 터지면서 이들은 전원 ‘처리’ 대상으로 바뀐다. 일단 격리됐다가 전선의 후퇴에 맞춰 일제히 학살됐다.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겠다며, 내륙에선 산골로 끌고가 처리했고(골로간다), 바닷가에선 수장시켜 버렸다.(물먹다) 희생자는 모두 20만에서 23만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요즘 직장이나 조직 안에서 왕따당하거나 밀려났을 때 혹은 언론에선 낙종했을 때 ‘물먹었다’고 하지만, 함부로 쓸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삶과 직결된 논의와 정보를 물먹이는 정부가 이끄는 대로 가다가는 골로가기 쉬우니 그 뜻이 새롭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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