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객원논설위원칼럼] ‘수질 관료’를 수입하자 / 김상종

등록 2007-04-16 18:11

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객원논설위원칼럼
환경부는 국민의 건강을 위하여 올여름 휴가철 이전에 물놀이 수질기준을 만들겠다고 발표하였다. 총대장균과 장내연쇄상구균 등을 통해 수인성 질병 유발을 파악할 수 있는 수질기준을 마련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그동안 상수원 위주의 정책에서 간과됐던 용도별 수질기준을 처음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환경부는 덧붙였다.

이 사례를 중심으로 우리가 얼마나 안전 불감증인 사회에 살고 있는지 평가해 보고자 한다.

환경부 발표 며칠 전인 지난 3월21일 미국 법원은 미 연방 환경보호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환경단체의 손을 들어 주었다. 물놀이를 통해 수인성 질병에 걸릴 위험을 낮추기 위한 새로운 병원성 미생물 기준과 검사방법을 2005년 10월까지 제정했어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아 연방정부기관이 책임을 방기하고 불법적인 행위를 하였다는 게 판결 내용이었다. 1986년에 제정된 허술한 미생물기준과 검사방법을 담고 있는 미국의 현행 제도로는 안심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기준과 검사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이미 1970년대 초반부터 물놀이에 의한 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미국은 20년 전부터 기준을 만들어 관리하여 왔지만 사법부에 의해 법규 강화를 서둘러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환경단체가 소송을 제기한 건, 미국의 현재 기준은 일부 세균만 해당되고 노로바이러스처럼 계속 확산되는 병원성 바이러스는 제외돼 시민 건강이 큰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생물 기준의 초과로 해변의 폐쇄 조처가 미국 전역에서 1년에 누적일수 2만일 동안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폐쇄 조처가 지역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주지만 2004년 오하이오주에서 1400명의 피서객과 주민이 수인성 질병에 집단 감염된 사례에서 보듯 건강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이다.

새 기준을 도입하면 앞으로 미국의 해변 폐쇄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수인성 질병을 일으키는 여러 종류의 바이러스에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엔테로바이러스는 플로리다 해안의 20~79%, 하와이 8%, 텍사스 40~72%에서 검출되었으며, 에이(A)형 간염바이러스도 캘리포니아 해안을 조사했더니 63%에서 검출되었다.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같은 유럽국가에서도 유사한 조사결과가 나왔다. 바이러스는 불과 1개를 섭취하여도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성 때문에 이러한 조사결과는 환경단체로 하여금 소송을 통해서라도 새로운 기준의 도입을 재촉하도록 만들었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병원성 미생물에 대한 관리 강화를 위해 지난 2000년부터 전국적인 물놀이 수질조사를 벌인 결과 바이러스에 의한 오염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해에 우리나라에서는 수돗물이 바이러스에 오염되었다는 논쟁이 한창 치열하게 일었으며 그 당시 환경부는 상수원수가 바이러스에 오염된 사실은 인정하였다. 그러나 수돗물만 생각하였지 상수원수가 오염되면 하류와 바닷물이 오염되는 것은 당연한데도 농업용수, 수산용수, 물놀이 수질을 관리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환경부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무시되었고 그 이후 조사를 해 본 적도 없다.

우리 환경부는 물놀이 수질을 지난 몇 십 년 동안 그대로 방치하다가 이제야 기준을 만들겠다며 20년 전에 만들어 이미 바꾸었어야 되는 낡은 미국의 기준을 도입하겠다고 한다. 그런데도 ‘의미가 크다’는 식의 평가를 내놓고 있다. 상수원수의 바이러스 오염도가 미국보다 평균 4배 정도 더 높다고 발표한 이 나라 관료들의 의식 수준이다.

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