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강/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객원논설위원칼럼
우리나라 ‘위장취업 노동자 제1호’ 조화순 목사님 생신 축하 모임에서 동일방직 노동자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노동문제를 내 인생의 중심에 가져다 준 주인공들이다. 알몸으로 ‘나체시위’를 하고 ‘똥물’ 세례를 받아가며 치열하게 싸워야 했던 가슴속 아픈 이야기들을 정작 본인들은 잘 꺼내지 않는다. 오히려 남들이 더 많이 이야기한다.
내가 불쑥 말했다. “돌아다니면서 보면… 30년 전 그때랑 똑같이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지금도 너무 많아.” 잠깐 동안 아무도 말이 없다가 한 사람이 말했다. “우리가 지금 그거 모를까봐 얘기해 주는 거야? 우리도 27년 만에 다시 길바닥에 나앉아 복직투쟁 하면서 생생하게 겪어 봤잖아.” 또 한 사람이 말한다. “우리가 돈이나 바라고 그러는 줄 아는 한심한 사람들도 많았는데, 하종강씨 그때 뭐했어?” 예나 이제나 ‘지식인’ 하종강은 이 알짜배기 ‘노동자’들이 무섭다.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집단 해고된 울산과학대 청소미화원 여성노동자들이 지난 3월7일 강제 해산에 맞서 옷을 벗고 저항했다. 한 달 70만원도 못 받는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렇게 싸워야 한다. ‘여성의 날’인 3월8일에는 광주시청에서 “시장님 뵙고 고용승계, 비정규직 철폐에 대해 얘기 좀 하고 싶다”던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 역시 강제 해산에 맞서 옷을 벗고 싸워야 했다. 날짜와 장소만 바뀌었을 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똑같은 일들을 수도 없이 겪고 있다. 이들은 ‘불순한 사상’으로 무장한 투사가 아니라 ‘우리도 노조 하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 노조에 가입했을 뿐’인 노동자들이다.
기업 경쟁력이 모든 인륜과 도덕 위에 군림하는 이런 일들을 어떻게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노동유연성’ 등의 개념으로는 합리화할 수 없다. 노동자들에게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란 ‘개방’을 통해 그 치열한 ‘경쟁’에 더욱 내몰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경쟁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이고 치열한 경쟁을 위해 ‘좀 더 개방을 했어야 하는데 아쉽다’는 것이 추진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성실한 노동자에게는 좋은 대우를 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고 불성실한 노동자에게는 불이익을 주는 대우를 해서 고통을 겪게 해야 한다는 것이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방식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가능하려면 부패한 재벌 설립자나 무능한 2세 경영진을 퇴출시키는 것이 먼저 가능해져야 한다. 그것이 영미식 시장경제를 가능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인해 노동유연성에 대한 압력이 높아져 비정규직 수요가 증가할 것이고 기업 구조조정, 업종 변경, 폐업 등으로 실업과 비정규직을 오가는 노동자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11만5510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다’거나 ‘일자리가 13만5천개나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코앞에 닥치도록 짐작하지 못했던 관료와 학자들이 주장하는 장밋빛 미래를 믿으라는 것은 무리다. 업종별 실직자 수와 구조조정 예상 기업의 규모를 분석한 ‘6만7806개에서 적게는 7793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보고서가 그나마 신뢰할 만하다.
회사 건물을 다시 짓기 위해 허물고 임시로 지어진 가건물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쓸쓸한 얼굴로 한 말이 귓가에 맴돈다. “건물 헐리고 기숙사 없어진다니까, 그 짐을 들고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 노동자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노동자의 고통이 장기적으로 ‘국익’이 될 수는 없다.
하종강/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