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칼럼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젊은이들에게 건넨 “배부른 돼지가 되지 말라”는 주문은 오늘날 한국사회에 더 적중한다. 누가 배부른 돼지가 되겠노라고 답하겠는가? 그러나 실제 세상은 배부른 돼지가 되려고 애쓰다 성공한 소수와 실패한 다수가 벌이는 이전투구의 아수라장이다. 이 아수라장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들 중에 ‘참여’정부 인사들도 포함된다.
오늘 우리는 남과 ‘가진 것’으로 비교하고 경쟁한다. 우리들 대부분이 일생 동안 대학입시와 취직 또는 임용을 위해, 딱 두 번 긴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오로지 상위권 대학에 들고자, 그리고 괜찮은 수입을 보장받거나 얄팍한 권력을 잡으려고만 긴장한다. 그렇게 해서 일정한 집단 또는 범주에 들거나 자리에 오르면 그만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바란 ‘훌륭하고 아름답고 올바른’ 삶은 어제의 나보다 성숙된 오늘의 나를 위해 자신과 치열하게 싸울 때, 그래서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풍요로우면서 정교하게 바꿔나갈 때 그 지평이 열린다. 물론 이는 어렵다. 특히 이미 형성된 의식을 합리화하면서 고집하는 보편성 때문에도 무척 어렵다.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가는 길이다”라는 격언은 격언에 머물고, 우리는 쉬운 길을 택한다. 그러면서 내가 속한 집단, 범주나 자리의 비교우위를 거듭 확인하고 강조한다. 개인적으로 내세울 게 없는 사람일수록 자기가 속한 집단과 범주에 더욱 집착한다. 한국인, 혈연, 내 학교, 내 지역, 내 종교를 확인하고 강조하는 한편, 내가 속한 범주나 집단에 속하지 않거나 못한 사람들을 차별·억압·배제하고, 그들의 개인적 노력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가로막는다. 보잘것없는 구성원들의 보잘것없는 사회가 구성되고 관철된다. 이 시대의 개혁은 이런 사회 구성 논리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담아야 했다.
이 점에서 ‘참여정부 평가포럼’은 참여 인사들의 면면을 볼 때 시사적이다. 오늘날 ‘개혁’ 세력은 그들의 가치관에 따라 “명분도 챙기고 자기 실리도 챙기는” 일에 성공한 집단 또는 범주에 가깝다. 그들 스스로 혁명보다 어려운 개혁의 담지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은 그들의 개혁이 그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참여정부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올바른 이해를 주장하며 모였다. 그들한테서 참여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통상독재’에 대한 개인적 견해는 아직 찾아보기 어려운데, 그들은 이미 정태인씨를 왕따시키는 데 성공했다. 초토화될 농촌과 어촌, 농어민들의 삶의 터전이 무너지는 것쯤은 보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인지 아직 알 수 없다. 거의 유일한 개혁입법인 사학법을 재개정하려는 것에 대해서도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 아직 드러나지 않는다. 참여정부의 교육인적자원부가 전경련과 함께 경제교과서를 만든 해괴한 일에 대해서도, 한국고속철도(KTX)와 새마을호 여승무원들을 쫓아낸 일에 대해서도, 행정자치부의 전국공무원노조 탄압에 대해서도, 구속 노동자 속출에 대해서도 그들의 개인적 견해는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참여정부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주문할 수 있는 ‘개혁’의 사람들이다. 그들만의.
4년 전 권력의 핵심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감격적으로 합창했던 그들, 그들에게서 민중은 애당초 없었고 오로지 임만 있었다. 이 허접한 사회에서 명분도 챙기고 실리도 챙기게 해준, 그들을 하나의 범주 또는 집단으로 만나게 한 ‘임’만 있을 뿐이다. 완장부대가 따로 없다.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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