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기 논설위원
유레카
담배를 끊지 못하고 하루 세 갑 이상을 피우다 폐암으로 숨진 제이컵 우드의 부인 셀레스트 우드는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소송이 본격화하면서 배심원들을 상대로 온갖 매수 전략이 펼쳐진다. 심지어 배심원들의 뒷조사까지 하게 되고 재판의 주도권은 거대 담배회사에 넘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배심원 가운데 한 사람인 대학생 니컬러스 이스터 덕분에 반전이 이뤄진다.
<펠리컨 브리프>로 유명한 미국의 작가 존 그리셤의 소설 <사라진 배심원>은 배심원 제도의 허점과 추악한 뒷면을 신랄하게 폭로한다. 그저 평범한 시민들이 어떻게 더러운 뒷거래에 휘말리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의 작품 가운데 <최후의 배심원>이란 소설도 있다. 1970년대 미시시피주에서 발생한 젊은 여성 강간살해 사건을 다룬 이 소설에서 12명의 배심원들은 자신들이 유죄 평결을 내린 대니 패드깃이란 인물에 의해 복수의 희생양으로 쓰러져간다.
정부의 사법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해 국내에도 배심원 제도가 도입되게 됐다. 비록 강제력 없는 권고적 효력만 갖고, 피고인이 희망하는 사건에 한해 적용되지만 국민의 재판 참여를 허용한다는 측면에서 그 의미는 크다.
부정적인 면도 있다. 그리셤의 소설처럼 매수·협박 또는 연고주의나 온정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한국처럼 허술한 곳에서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배심원으로 불려가는 것 자체도 힘든 일이다. 미국의 경우 하루종일, 어떤 때는 4~5일을 붙잡혀 있어야 한다. 이유 없이 빠지면 감옥에 갈 수도 있다. 그래서 갖가지 핑계를 대고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다. 예비군 소집을 통보받은 한국 남자들처럼.
배심원 제도는 정말 여러가지로 불편한 제도다. 국민이나 판사나 …. 그러나 그것으로 작은 인권이나마 보호할 수 있다면 결코 헛된 시도는 아닐 것이다.
정남기 논설위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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