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객원논설위원칼럼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양극화의 관계에 대한 논박이 청와대와 정치권, 그리고 시민사회 진영 안에서 격화하고 있다. 정부의 홍보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인가? 아니면 오히려 양극화를 넘어 ‘양동강’ 나는 사회를 낳을 것인가? 그러나 솔직히 어떤 결론도 사전에 내려져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시점에서 요구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의 백년대계를 책임진다는 측면에서 최악의 시나리오까지도 염려하는 이성적 판단이다.
분명히 할 것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성장의 동력을 찾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미국과의 전면 개방 경쟁체제에서 신성장 동력을 찾지 않는다면 샌드위치 신세로 ‘압사’하고 마는 우리 경제의 잿빛 미래상을 염려한 정부에 의해 자유무역협정의 불은 지펴졌다. 왜 그 대상이 미국이었는지, 그리고 왜 이런 포괄적 수준의 자유무역협정이었는지가 논란이 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인식만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거부하는 쪽도 끝내 동의 안 하는 바 아니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분명히 할 것은 성장의 파이를 키운다고 국민 모두가 골고루 잘사는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조세와 사회보장제도를 통한 소득분배 개선 효과가 6% 정도에 머물고 있어 50%를 넘나드는 선진국의 그것과는 비교하기조차 민망한 수준이다. 성장의 굵은 동맥을 찾아낸다 해도 특정 집단, 특정 산업, 특정 기업, 특정 지역이 혜택을 독식한다면 대중의 상대적 궁핍과 양극화의 망령은 현실이 되며, 결국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국민 일반에게 벗어날 수 없는 질곡이 된다.
정부는 이미 ‘비전 2030’을 통해 사회안전망에 관한 한 최대치를 설계해 놓았다고 자위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자유무역협정이 계층별, 지역별, 산업별로 줄 차별적 충격은 크기만 한데 203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에 도달한다는 사회보장의 장밋빛 미래는 당장 벌어질 고통에 별 실효가 없다.
이 시점에서 정부는 좀 더 솔직해져야 한다. 자유무역협정 자체는 양극화를 해소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일방적인 낙관론에 기초하여 체결의 당위성과 무오류성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자유무역협정 체제가 초래할 수도 있는 역기능과 재앙적 요소가 무엇인지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경제를 미국 경제에 급속히 편입시킬 수도, 경제적 효율성만을 중시하는 영미식 자본주의 모형으로 재편시킬 수도, 비정규직과 빈곤층, 실업자군을 더욱 양산할 수도 있음을 고백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정부는 그런 비극적 상황이 오지 않도록 어떤 장치를 마련하고 있는지를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자유무역협정 특별세와 실업수당을 도입하고 마지막 한 사람의 실직자를 위해서까지 새로운 일자리를 위한 적극적 노동시장 프로그램이 발동되며, 경쟁력 있는 인적자본이 되도록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적용될 프로그램이 어떻게 마련될 것인지 보여주어야 한다. ‘비전 2030’이라는 먼 미래 청사진이 아니라 당장의 ‘신 비전 2010’이 절실하다.
그리하여 마침내 국민은 자유무역협정 체제와 노동의 유연성을 받아들이는 대신 정부는 그에 걸맞은 높은 수준의 양극화 해소책을 구현하는 빅딜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만 현 정부의 임기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기에는 충분하지만 양극화 해소책을 수립하고 이를 실현하기에는 너무나 짧다. 일을 저지를 수는 있지만 책임질 수 없는 불일치의 미학(?)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가 국민과의 빅딜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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