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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노예의 문화 / 박혜영

등록 2007-05-07 17:33수정 2007-05-08 17:50

박혜영/인하대 영문과 교수
박혜영/인하대 영문과 교수
기고
어떤 연유에서 아이가 생기고, 그리하여 부모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식만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내 아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생명도 까닭을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연유로 태어나며, 따라서 이들 모두가 소중하게 잘 자랄 수 있도록 공동의 삶의 문화를 가꾸어 나가려는 다짐이다. 그래서 부모의 마음을 지닌다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기를 바라는지, 또 그들에게 어떤 삶을 물려줄 것인지와 같은 삶의 문화를 생각하는 일이 된다. 조상들은 이런 마음가짐을 두고 ‘자식농사’라고 불렀다. 자식을 키우는 것이 우리가 살아갈 땅을 돌보는 것과 근본적으로 같은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삶의 터전을 돌보고, 거기에서 함께 살아갈 후손을 키우는 일은 모두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롯되기에 자식을 키우는 데도 ‘문화’가 필요한 법이다.

자식을 키우는 데는 어떤 문화가 필요할까? 지금과 같은 승자독식, 차별과 배제의 폭력적 논리는 바로 조폭세계의 삶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약자는 강자에게 굴복해야 하고, 꼴찌는 일등에게 수모를 느껴야 하고, 아이들은 자라면서 돈과 권력의 힘에 순응해야 한다면 그런 삶은 아무리 물질적으로 편안해도 노예의 삶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일등을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나머지는 모두 노예의 굴종적인 삶을 강요당하는 세계가 된다. 여기에는 오직 명령과 복종이라는 비뚤어진 사적 인간관계만 있을 뿐이지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존엄성을 누릴 수 있는 정치적 권리가 없다.

정치사상가인 한나 아렌트는 그리스 시대의 폴리스에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라는 두 가지 삶의 공간이 있다고 말했다. 토론과 선거와 같은 정치활동은 공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졌고, 가족과 생계 유지, 재산 소유와 같은 가계·경제활동은 사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복종이니, 폭력이니, 지배니 하는 말들은 본래 가정 안의 주인과 노예의 지배관계를 지칭하던 말이지 광장에 나와 평등한 ‘말’로써 상대를 설득하던 폴리스 시민들이 사용하던 정치언어는 아니었다. 그리스인들은 말로 하지 않는 것은 모두 폭력이라고 보았고, 폭력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노예지 시민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영어의 ‘바보’(idiot)라는 단어는 그 어원이 그리스어의 ‘자기 자신’(idion)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사적영역에 갇혀 오직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자는 시민들이 함께 살아갈 폴리스 공동체를 생각하지 못하는 노예들의 모습이고, 이는 결국 ‘바보같은’(idiotic) 삶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리스에서는 사적인 이해관계만 추구하는 개인의 삶이란 무엇인가를 박탈당한 삶이 된다. ‘사생활’(privacy)이 ‘박탈당한’(privative)과 같은 어원이라는 점 역시 사적인 인간세계만으로는 근본적으로 온전한 삶이 못된다는 점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자식들을 어떤 문화 속에 키우는 것이 노예처럼 ‘바보같지 않은’, 그리고 무엇인가를 ‘박탈당하지 않은’ 자유로운 시민으로 키우는 게 될까. 한 대기업의 회장이 마치 노예의 주인처럼 자식을 위해 마음대로 폭력을 휘두르고, 한 전직 대통령과 그 부인이 자식이 아버지의 대를 잇도록 폭력적으로 한 표를 밀어붙이는 모습들은 결국 자식을 공동체 속의 책임 있는 시민이 아닌 그저 힘센 주인의 노예로 만드는 길일 뿐이라는 생각이 어버이날에 문득 들었다.

박혜영/인하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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