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섭 논설위원
아침햇발
연예인은 대중의 욕망이 빚어내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화려함과 돈에 대한 욕망이 연예인에게 투사되고 연예인은 이를 확대 재생산해 욕망을 더욱 부추긴다. 그리고 이 재생산 과정에는 연예기획사가 있다.
증권시장 또한 욕망이 불타는 곳이다.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면서 주식 투자를 통한 ‘대박’의 꿈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 됐다. 많은 ‘개미’들은 구질구질한 현실을 단번에 바꿀 꿈을 안고 오늘도 주식에 매달린다.
그래서 연예인과 주식의 만남은 욕망이 극대화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대표적인 사례가 요즘 가장 영향력이 큰 연예기획사라는 팬텀엔터테인먼트다. 이 회사는 2005년 코스닥 등록기업인 골프용품 업체 팬텀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증권시장에 등장해 2년 동안 현란한 변화상을 보여줬다. 인수가 거론될 당시 몇백원 수준이던 주식가격이 10개월 뒤 4만원까지 치솟았고 지난해 상반기까지도 2만원대를 유지했다. 그 이후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지금도 3600원(무상증자를 고려하면 7200원꼴) 정도를 형성하고 있다. 2005년에 73억원 적자, 지난해에 417억원 적자를 기록한 경영 실적과는 사뭇 다른 움직임이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dart.fss.or.kr)에 올라있는 공식 자료로 추적한 이 회사의 변화는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다. 2005년 4월1일 이 회사 최대주주는 주식 530만주를 연예기획사와 비디오 배급사를 운영하는 두 사람에게 25억원에 넘기기로 계약을 맺었다. 주목받지 못하던 골프용품 업체가 문화산업의 첨병 기업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1대, 2대 주주가 된 두 사람은 곧 자신들의 연예기획사와 비디오 배급사를 자회사로 흡수해 회사를 정비한 뒤 대중예술 관련 업체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실적은 계속 나빠졌다. 지난해 4월21일치 이 회사의 공시자료를 보면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투자 위험성을 언급한 대목은 이렇다. “국내 연예 매니지먼트사의 수익구조는 스타급 연예인들이 50% 이상의 매출을 구성하는데 … 수익배분 비율이 6 대 4에서 8 대 2 정도로, 스타급 연예인을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수익성이 낮은 형편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신경 쓰는 투자자는 별로 없다. 잠재성 또는 ‘미래 가치’라는 말로 쉽게 합리화되기 때문이다.
‘현란한 꿈’을 펼쳐보인 두 사람은 2년도 안 되는 기간에 주식만으로 200억원 이상을 벌었다. 연예기획사 출신의 최대주주는 지난해 7월부터 꾸준히 주식을 매각해 100억원 이상을 족히 남겼다. 그는 아직도 요즘 시세로 27억원어치의 주식을 갖고 있다. 2대주주는 자기 지분 전체를 지난해 9월 제3자에게 넘기면서 엇비슷한 액수를 벌었다.
그 사이 골프용품 업체 ‘팬텀’은 2년 전 자리로 사실상 되돌아갔다. 지난해 말 팬텀골프라는 회사로 분리된 것이다. 분리매각 대금은 10억원이었다. 애초 인수대금 25억원과의 차액은 기획사 쪽이 코스닥이라는 무대를 제공받은 대가로 볼 수도 있겠다.
많은 사람은 이런 일을 볼 때 몇몇 사람의 현란한 술수에 선량한 투자자들이 놀아난 것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닷컴 기업들의 붕괴 과정이 보여주듯, 이런 일은 욕망의 끝없는 확대 재생산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에서 유별난 일이 아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이제 팬텀엔터테인먼트는 새출발을 시도하고 있다는데, ‘개미’들도 새출발이 가능할까? 대박의 욕망을 버리지 않는 한 쉽지 않을 것 같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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