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24 19:21
수정 : 2005.03.24 19:21
‘자유무역협정 지각생’ 한국이 ‘우등생’이 되기 위해 발에 땀이 났다. 지난해 4월 칠레와 4년의 진통 끝에 최초의 자유무역협정(FTA)을 간신히 성사시킨 후 11월 싱가포르와의 공식 협상 타결에 힘입어, 일본, 유럽연합, 동남아국가연합, 멕시코, 인도, 캐나다, 미국 등 20여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위한 협상, 공동연구, 예비협의 등을 하고 있다. 이른바 동시다발적 협정 전략을 통해 ‘개방형 선진 통상국’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자유무역협정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통상교섭본부는 “짧은 기간 안에 여러 나라와 협정을 추진함으로써 그간 지체된 협정 체결 진도를 만회하고 … 또한 여러 나라와 동시에 협정을 추진하게 되면 자유무역협정 협상의 모멘텀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자유무역협정은 많이 추진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니 닥치는 대로 하겠다는 전략인가.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의 “수출만이 살 길이다”가 “개방만이 살 길이다”로 바뀐 것인가?
우리 경제의 발전을 위해선 대내 개혁과 대외 개방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극단적 개방주의자의 주장처럼 개방을 많이 하고 앞당겨 할수록 우리나라가 빨리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우리나라는 폐쇄된 나라가 아니고 세계에서도 가장 개방된 나라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무역 의존도는 6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 가운데서 유럽연합에 속한 인구 1000만명 안팎의 몇몇 소국들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편이다. 우리나라의 주식시장은 외국인 지분율이 43%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나라 중에서 헝가리를 제외하고 가장 개방되어 있다. 심지어 개방의 걸림돌처럼 치부되는 농업조차 식량 자급률 25%가 말해주듯이 세계에서 가장 개방된 시장이다.
다음으로 개방을 많이 할수록 또 앞당겨 할수록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자유무역론자들은 자유무역협정이 경제성장, 수출증대, 국민후생의 증가 등 국익을 증대시킨다고 주장하지만, 객관적 근거가 없다. 설사 협정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수출이 증대한다고 해도, 국민 생활이 반드시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을 위한 무리한 자본시장 개방이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가져왔고, 무분별한 개방과 자유화는 투기자본에 의한 금융 종속과 국민경제의 불안정성을 가져오고, 농민과 노동자의 권리, 환경 등에 심각한 악영향을 부를 가능성이 있음을 잘 안다. 자유무역은 기본적으로 강자의 논리이기 때문에 국제 경쟁력이 있는 소수의 수출 대기업의 이익은 극대화하는 반면, 경쟁력 없는 다수의 중소기업이나 농업 부문에는 심각한 타격을 준다. 그렇다고 자유무역으로 이익을 본 집단으로부터 손해를 본 집단으로 이익을 재배분할 메커니즘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날로 심화되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이를 잘 말해준다. 연일 사상 최고를 경신하는 수출 부문, 침체의 늪을 헤매는 내수 부문의 심각한 균열을 극복하고 국외 부문과 국내 산업의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개방 확대보다 급하다.
“자본가에게 착취당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자본가에게 착취당하지 않는 것”(존 로빈슨)이라는 말처럼 자유무역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자유무역협정 대세론과 맹목적 국익론을 앞세워 동시다발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한국사회의 장기 비전과 경제발전 전략 속에서 자유무역협정으로 표현되는 지역주의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올바르게 설정해야 하고, 참으로 국민 다수의 이익에 기여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협정에 따른 철저한 국내산업 대책의 수립과 국민적 공감대의 형성이다. 이것이 안 되면 자유무역협정 추진 자체가 어렵고,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킬 뿐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말한다. “나는 우리 집의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이길 바라지 않으며, 우리 집 창문이 꽉 닫혀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모든 나라의 문화가 가능한 한 자유롭게 우리 집 근처에서 흩날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그 무엇에 의해서도 나의 기반이 흔들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박진도/충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