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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북한이 먼저 풀라 / 장정수

등록 2007-05-31 18:37

워싱턴 장정수 논설위원
워싱턴 장정수 논설위원
아침햇발
2·13 북핵 합의가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자금 송금문제라는 첫 관문을 넘지 못하고 넉 달째 표류하고 있다. 다단계 이행과제로 구성된 북핵 합의 가운데 가장 쉬운 것으로 여겨졌던 북한자금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 한 현재의 교착상태는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부시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 속에서 나왔던 2·13 합의가 순항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이처럼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재무부를 중심으로 한 미국내 강경파의 대북 적대정책에서 기인한다. 미국 재무부는 미국 은행이 문제의 북한자금 송금을 중계할 경우 불법자금 세탁 거래를 금지한 애국법 311조 위반행위로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형식상으로는 법집행 논리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북한 금융제재의 연장인 것이다. 북한은 2500만달러를 되찾을 수 있게 됐지만 미국 재무부가 금융제재라는 몽둥이를 휘두르는 상황에서 어느 은행도 북한과 금융거래를 하려들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부시 대통령은 통수권자로서 국가 안보상 필요를 이유로 불법세탁 자금으로 판명된 자금의 거래를 허용할 수 있는 면죄권 발동 권한을 갖고 있다. 대북 협상파인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이 방안을 강력히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부시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우려해 면죄권 발동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미국은 북한자금 문제가 중국령인 마카오의 비디에이가 관련된 중국의 문제라는 시각에서 중국 정부가 발벗고 나서서 해결해 주기를 종용하고 있다.

북한도 교착상태에 책임이 있다. 합법자금 계좌와 불법자금 계좌를 하나의 단일 계좌로 통합함으로써 자금 전체를 불법자금으로 만들어 미국 은행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은행들이 해당 자금 거래를 기피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합법자금 계좌를 분리해서 대응했다면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한 미국 은행의 송금은 실현됐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교착상태를 타개할 수 있는 열쇠는 북한이 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힐 차관보의 제안처럼 북한이 비디에이 자금의 송금이 실현되기 이전이라도 영변 원자로를 먼저 폐쇄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비디에이 자금 문제는 유보하고, 북한이 비핵화 이행조처들을 앞장서 이행하고, 미국 등 나머지 6자 회담 참가국들이 중유 제공을 포함한 대북 경제 지원들을 이행해 나가는 방식으로 우회하는 것이다. 이 경우 힐 차관보를 비롯한 미국내 협상파의 입지는 현재보다 크게 강화될 것이다. 이런 결과가 북-미 관계 정상화라는 북한의 전략적 목표의 실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북한은 또 일본인 납치문제에 성의를 보임으로써 일본과의 관계 개선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납치문제에 상당한 진전이 이뤄지는 등 북-일 관계의 개선이 실현될 경우 이는 결과적으로 북-미 관계 개선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의 이런 조처들은 남북 정상회담 개최 등을 포함한 남북 관계의 획기적 진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인들을 제거해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체제의 구축에도 기여하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바둑에서도 고수들은 수가 잘 보이지 않는 어려운 곳에서는 손을 빼고 쉬운 곳에 수를 둠으로써 살기 힘들었던 대마를 살려내 역전승을 거두기도 한다. 북핵 문제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해결 가능한 것부터 먼저 이행해 나갈 경우 난마처럼 얽힌 북핵 문제의 해법이 의외로 쉽게 마련될 수 있을지 모른다.

워싱턴 장정수 논설위원

jsjang052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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