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순 대기자
김효순 칼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그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다.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도 전혀 몰랐다. 그의 이름은 후루노 요시마사, 일본인이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풀리지 않은 과거사들이 여전히 얽혀 있다. 1973년 8월의 더운 여름날 도쿄의 한 호텔에서 백주에 벌어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납치사건도 그 하나다. 34년의 짧지 않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건 관련자들의 증언과 한국 쪽 외교문서의 공개로 상당 부분 실상이 드러났음에도 정부 차원의 청산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시민사회의 관심이 없으면 또 하나의 의혹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김대중 납치사건의 뒷마무리에 대한 일본의 관심이나 반응을 알아보다가 그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당시 마이니치신문의 서울특파원을 했던 일본인이 올해 초 <김대중 사건의 정치결착>이란 책을 냈다는 것이다. 꺼림칙한 뒷거래를 다룬 책 가운데는 밑도 끝도 없이 각종 소문이나 추측만 모아놓은 것들도 적지 않다. 필자의 경력을 조사해 보니 1960년 마이니치신문에 입사해 73년 봄부터 76년 봄까지 3년 동안 서울특파원을 했고, 오사카 본사 사회부장, 편집국장을 거쳐 규슈 야마구치에 있는 서부본사의 사장까지 지냈다. 그가 70년대 중반 동아일보사에서 강제해직된 뒤 언론 민주화 운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했던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의 명예위원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동아투위는 서슬이 시퍼렇던 유신시절 국내 언론이 유신체제 철폐투쟁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을 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던 당시의 외신기자 7명을 명예위원으로 위촉을 했는데, 그 중 한 사람이다.
책을 구해 읽어보니 한 사건을 추적하는 노기자의 열기가 느껴졌다. 1936년생으로 지난해 고희를 맞은 그는 납치사건에 대해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던 부분을 지속적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미국 중앙정보국과 정부 공문서관에 서한을 보내 사건 당시 주한 미국 대사관과 국무부의 교신기록을 두 차례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사건의 직접 피해자인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자 사건을 파헤치려는 의지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 99년 방한해 취재했으나 모호한 답만 듣고 돌아갔다. 일본에서도 정치적 결착의 당사자로 록히드 추문사건으로 구속됐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신문한 특수부 검사나 외무성 전직 관료들을 쫓아다녔으나 알맹이 있는 내용을 얻어내지 못했다. 여기저기 찔러봐도 결정적 단서를 찾아내지 못했던 그에게 작년 한국 외교부에서 공개한 외교문서는 자료의 보고였다. 일본 쪽의 협상 자세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외교문서에다 당시의 취재메모, 관계자들의 증언을 비교하고 분석해 가며 책을 쓴 것이다.
책을 보며 곁가지로 느낀 것은 유신시절 외신기자들의 삶도 순탄치 않았다는 점이다. 민주화 운동을 보도하지 말도록 직간접 압력·위협을 받았고, 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귀국할 때 취재스크랩 등 자료를 상당부분 기관원들한테 압수당했다. 그는 1단짜리 특종도 제법 했다. 74년 3월 동아일보 노조 결성을 처음 알렸고, 75년 3월 송건호 동아일보 당시 편집국장의 사표제출도 1단으로 특종보도했다고 한다.
자신을 사회부 기자로 규정하는 그는, 지난주 오사카에서 만났을 때 정치부 기자들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일본 정치의 특성상 정치부 기자들이 비밀을 많이 알고 있으나 쓰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쓰지 않으면 기자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그의 기자 정신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지, 진상규명의 새로운 계기로 이어질지는 예단할 수 없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70대의 나이에도 도전을 계속하는 그의 모습이 일본 사회의 또다른 저력이라는 점이다.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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