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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27 20:47 수정 : 2005.03.27 20:47

필자는 영국에서 안식년 연구를 하면서 영국식 웰빙을 체험했다. 우리의 웰빙이 건강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 내가 느낀 그들의 웰빙은 개인의 기본권 존중과 권익 보호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재작년 겨울이다. 필자가 세든 집이 1층이어서 평소 창문을 닫아두었는데 그날따라 환기가 필요해 창문을 열었다. 화장실에 간 사이 큰 소리가 나기에 재빨리 거실에 가 보니 돌풍과 함께 큰 가방 2개가 사라지고 없었다. 나중에, 이웃집 학생에게 얘기했더니 그날 저녁 거리를 산보하던 중에 내가 사용하던 검정 트롤리 가방이 어느 집 앞뜰 기둥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고 귀띔해 주었다. 필자가 그 집을 찾아갔더니, 그날따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내 가방이 밖에서 비를 맞고 있었다. 집 안에서 보관해 주면 더 좋지 않았느냐고 하자 집주인은 만일 남의 물건을 소유자의 허락도 없이 집 안에 넣어두면 훔친 것으로 간주되어 법에 걸린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물건뿐 아니라 지적재산권에 대한 존중 역시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대학교에서는 논문이나 원고를 쓸 때는 ‘다섯 가지 단어 규칙’을 꼭 지켜야 한다. 뭔고 하니, 원 저자의 문장을 인용할 때 원서 속의 인용문 속에 있는 명사나 동사를 5개 이상 그대로 베껴서는 안 된다. 규칙을 어기면 표절로 간주할뿐더러 법의 제재를 받게 된다. 표절 시비에 걸리지 않으려면 이들 명사나 동사를 자신의 말로 바꾸어야 한다.

무슨 영업이든지 손님에게 불친절하게 대했거나 피해를 주었을 때 역시 제재를 받는다. 처음 든 셋집에서의 일이다. 전기 쿠커가 너무 불결하여 청소부를 불렀다. 약속 시간보다 2시간30분 늦게 왔기에 “아주 일찍 왔네요”라고 했더니 그는 “일을 시작할까? 아니면 돌아갈까?”라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그래서 내가 “당신이 늦게 오는 바람에 나의 약속들이 일그러졌다.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는 “그렇게 생각 안 해”라고 계속 고함을 지르다 결국 청소도 엉망진창으로 해 놓고 가버렸다. 기가 막혀서 청소부를 보낸 부동산업소에 가서 호소를 하니, “수고비를 주지 말라. 그 상황을 편지로 써서 보내면 우리들이 대신 벌을 주어 다스리겠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석달쯤 뒤 그 청소부한테서 편지가 왔다. “여태까지 청소비를 받지 못했으니 소장에게 그 사실을 좀 알려달라”는 호소였다. 부동산업소의 소장에게 그 편지를 보여 주었더니 ‘신경 쓰지 말라’며 청소비는 더 있다가 줄 것이라고 말했다. 청소부는 부동산업소의 주문을 받은 청소업체가 보내주는 까닭에 불친절하다는 민원을 받은 청소부는 더는 고용하지 않게 된다.

쇼핑이나 은행 이용 때 문제가 발생하면 매니저가 나서서 중재한다. 가령 물건을 반품한다거나 서비스가 불친절하거나 차별을 당했을 때 매니저한테 알리면 신속하게 손님의 편에서 일을 처리해 준다.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에 분쟁이 생길 때도 중재하거나 해결해주는 시 지정 기관이 여러 곳이 있고 자원 봉사자들이 무료로 일하고 있다. 예를 들어 월세만 올리고 고장난 시설을 안 고쳐줘 불편을 주는 경우 시 의회에 편지로써 진정할 수 있다. 그러면 시 의회에서 담당자가 파견되어 사실 여부를 조사하고 집주인에게 시정통보를 한다. 그래도 시정이 안 되면 법의 제재를 받는다.

우리나라에서도 개인이 부당하게 피해를 보았거나 불친절을 당했을 때 제재를 가하는 기관이나 이를 하소연할 수 있는 사회적인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는 매사에 너무 정에 치우쳐 개인이 불친절을 당했거나 억울한 피해를 받은 경우 그냥 참고 넘기는 경우가 많다. 개인의 기본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불공정한 거래 행위를 감시하고 제재하는 사회제도가 마련되고 우리 시민 모두가 올바른 서비스 정신을 실천할 때 진정한 웰빙을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

홍진옥/인제대 영어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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