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진 한겨레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유레카
마틴 스코세이지의 1980년 작품 <분노의 주먹>은 링 위에서 연습 중인 한 복서의 느린 몸짓으로 시작한다. 그 밑으로 이탈리아 작곡가 피에트로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이 깔린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이 익숙한 선율을 <대부 3>에 넣었다. 이 오페라의 배경이 이탈리아 시칠리아였고, 그곳은 미국 마피아의 ‘고향’이었다. 마스카니는 가장 아름다운 선율로, 가장 낮은 곳에서 사는 이들의 처연한 비극을 담았다.
이탈리아 남쪽 끝 지중해 한가운데 떠 있는 섬 시칠리아는 한 해에만 수백억달러를 번다는 ‘원조’ 마피아 조직 코사 노스트라의 본산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래처럼, 이 아름다운 섬은 나라에서 가장 궁핍한 ‘일상’들을 품고 있다. 지하경제의 ‘번성’이 주민에게는 혜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요즘, 남과 북으로 또렷이 갈려 벌어지는 소득 양극화 문제로 시끄럽다. 시칠리아의 1인당 연평균 급여는 밀라노를 끼고 있는 북부 롬바르디아의 65% 수준이다. 북부의 실업률은 11~13%지만, 남부는 34%를 넘겼다.
마피아에 부를 나눠달라고 차마 말 못하고 가슴앓이를 하는 시칠리아인들에 견주면 우리는 그나마 나은 편인가? 일반세의 사회보장 부문 지출 비율이 3%로 경제협력개발기구 20개국 평균 43%에 크게 못미치는 현실임에도 속이 빤한 ‘성장 뒤 분배’ 타령 하나 잠재우지 못하는 게 우리다.
세계적인 테너 엔리코 카루소의 뒤를 이었다는 이탈리아 베니아미노 질리가 부른 ‘시칠리아 마부의 노래’란 곡이 있다. 마지막 부분에선 하루를 공치고, 그 하루를 굶은 마부의 아픈 신음이 흘러나온다. “너를 위해 노래를 할테니, 날 좀 집으로 ….” 희망 없이 또 내일을 살아야 하는 한국 ‘마부들’의 탄식이기도 하다. 우리 주위 어디에나 널려 있는, 그래서 더 아프고 슬픈 우리들의 이야기.
함석진 한겨레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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