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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객원논설위원칼럼] 미제라고 다 좋냐 / 김상종

등록 2007-06-27 17:46

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객원논설위원칼럼
‘벤 앤 제리’는 미국에서 맛뿐 아니라 소비자 신뢰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한 아이스크림 회사다. 대기업을 포함하여 수시로 식품 안전성 문제가 터져 나오는 우리 입장에서 이 회사가 소비자의 폭넓은 신뢰를 받게 된 배경은 주목받을 만하다.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몬샌토가 유전공학적으로 개발한 소 성장호르몬을 과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용하도록 1994년에 허가하였다. 이 호르몬 주사를 맞은 소는 우유를 10% 정도 더 생산해 미국 농가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 우유 성분은 이미 천연 우유가 아닐뿐더러, 소에게 유방염을 일으켜 우유에 세균이 많이 들어 있거나 항생제 오염을 높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우유를 마신 사람들에게 유방암·장암·전립선암을 유발한다고 하여 암예방연대 같은 보건단체들은 사용 금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 유럽연합,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일본은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이 아이스크림 회사는 1993년부터 우유를 공급하는 농민들에게 호르몬 사용을 전면 금지했을 뿐 아니라 주정부의 압력에도 인공 성장호르몬이 사용된 우유의 문제점을 소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왔다. 또한 다른 유기농 식품업체들과 공동으로 정부에 대한 법정 투쟁을 벌여 ‘인공 소 성장호르몬 사용을 하지 않았다’는 표시를 유제품에 표기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였다. 이에 소비자단체들은 유제품 구입 때 그 표시의 확인을 권장하고 있다. 심지어 인공 호르몬 사용이 전면 금지된 유럽산 치즈를 대안으로 권장한다.

물론 우리나라 같으면 이토록 무모하게 식약청에 대항하는 식품회사가 존재하기도 어렵겠지만, 소비자의 신뢰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 또한 자명해진다. 굳이 이 이야기를 장황하게 소개하는 이유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우려하는 사람들에게 ‘미국 사람들도 다 먹는 쇠고기를 우리나라 사람이 왜 못 먹냐’고 하는 경제 관료들의 친절한 설명 때문이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 미국에서도 건강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우유·치즈를 골라서 먹는다.

쇠고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럽연합은 1989년 1월1일부터 호르몬 처리한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수입금지 시켰다. 성장호르몬 처리가 유방암 등 암 발생을 촉진한다는 우려 때문이다. 미국 소비자단체들은 정부에 호르몬 처리 금지를 요구하며 소비자들에게는 정육점에 호르몬 처리하지 않은 쇠고기 판매를 요구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의학자·보건단체·소비자단체들이 우려하는 미국산 농축산물과 식품에 대한 위생검역 권한을 우리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미국에 대폭 넘겨주었다. 또한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수입검역 절차도 미국 요구대로 완화해 식탁주권을 넘겨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럽연합은 유전자 조작을 한 기업에 구체적인 정보 공개를 요구하여 부분적으로 사용된 식품까지도 정확하게 가려낼 수 있도록 한층 더 엄격한 관리를 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반환된 23개 기지 땅과 지하수 정화에 6천억원까지 든다는 미군기지 오염처리비용도 한-미 동맹을 위해 우리가 떠안았다고 한다. 이번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에서는 또 무엇을 양보할까.

정작 삶의 기본이 되는 먹거리와 땅과 물의 안전은 희생시키고 수많은 거짓말을 해가며 강행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누구를 위해 무엇을 추구하자는 노릇인지 모르겠다. 애시당초 국회는 기대할 것도 없었고, 국민투표를 이끌어 내는 것도 어려워 보여 무기력해질 따름이다. 오죽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 최대 수혜 업종이라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마저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 파업을 생각했겠는가. 답답하다.


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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