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28 20:49
수정 : 2005.03.28 20:49
작년에 연예인과 정치인을 제외하고 사람들의 입에 가장 자주 오르내렸던 이름이 둘 있다. 지율 스님과 황우석 교수. 두 분 모두 생명을 다루는 아주 특별한 일을 주도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반대쪽에 서서 서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율은 천성산을 지켜온 비구니지만 자신의 생명을 죽여 가며 사람들이 하찮을지 모르는 도롱뇽이란 뭇생명을 살리고자 했다. 반면 황 교수는 배아복제 기술을 세계 최초로 성공시켜 국가적 과학영웅으로 떠올랐다. 그의 연구가 당장 한국 경제에 큰 부가가치를 안겨줘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경제가 곧 선진국들을 추월할 것인 양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인간복제 및 생명의 부품화, 상품화, 자연계엔 금지된 이종간의 잡종 및 반인반수의 키메라 생성을 야기할 수 있는 무서운 기술이다. 더구나 배아는 언제나 생명으로 발전할 수 있는 명백한 인간생명의 일부이기 때문에 생명윤리의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때문에 유엔은 얼마 전 ‘인간배아 복제 금지 선언문’을 채택하기에 이른 것이다.
자연의 질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탄소를 기본원소로 태양에너지를 흡수해 생성된 모든 생명체들은 수천만년에 걸쳐 만들어진 정교한 퍼즐처럼 무기물질인 공기나 물, 토양을 매개로 서로 영양물질과 에너지를 교환하면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다. 만일 퍼즐 일부분이 갑자기 커지거나 작아지게 되면 전체가 뒤틀리게 되거나 구멍이 생겨 한꺼번에 무너지듯이 생태계도 스스로 자정시킬 수 있는 완충범위를 벗어난 큰 변화가 생긴다면 재난을 맞게 된다. 생태계의 번성과 쇠퇴는 사실 과거에도 수없이 일어나 이미 지구는 생물의 90% 이상이 사라지는 대멸종을 다섯 차례나 경험한 바 있다. 지구 대멸종은 지구 공전주기에 따라 태양빛의 세기가 약해져 10만년을 주기로 찾아오는 빙하기의 도래에 의해 일어나거나, 갑작스런 해저화산의 폭발, 또는 소행성의 충돌로 인해 생긴 먼지가 수년 동안 햇빛을 가려 가뭄과 한발을 가져와 지구 생태계에 치명타를 가했다. 그러나 요즘 일어나는 기상이변과 환경호르몬으로 인한 동물멸종 문제, 암과 아토피의 급증, 유전자 조작 등의 생명 변형으로 인한 동식물의 왜곡은 이런 주기적인 자연현상이나 우연으로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 돈벌이를 위한 첨단과학 경쟁으로 사람들이 자초하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산업화로 수천만년에 걸쳐 만들어진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에너지가 미국 등 선진국들의 과소비로 단 몇십년 만에 고갈되면서 대기 중 탄산가스 농도가 유례없이 높아지면서 지구온난화가 초래됐다. 또한 사람들이 수십만 종의 화학물질들을 합성·남용해 자연계를 오염시키자 분해되지 않고 쌓이면서 생물체에 돌연변이원이나 발암물질 등으로 작용해 생태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영국에서의 연구 결과 생물 종들의 개체 수가 지난 40년 사이 최고 70%까지 감소해 지구 역사상 제6차 대규모 멸종이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얼마 전 이십여만의 인명을 앗아간 지진해일(쓰나미)이 지나간 뒤 살펴보니 야생동물의 시체는 단 한구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원인도 모른 채 순식간에 죽음을 당한 문명세계에서 온 관광객들과는 달리 자연으로부터 오는 위험신호를 미리 감지하고 일찍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던 것이다. 지율도 ‘살려주세요’라는 천성산의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천성산 뭇생명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대상으로 과학을 연구해 각종 편리한 도구를 만드는 데 이용해 왔지만 이로 인해 초래될 지구 전체의 공멸을 가져올 수 있는 자연의 절규와 경고는 못 듣고 있다. 수많은 자연법칙 중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과학적 성과를 이용해 이익을 취하려는 무한경쟁 속으로 빠져들면서 생태적 감수성조차 상실해버린 것이다. 돈이나 권력, 명예에 대한 코앞의 욕심 때문에 판단력을 상실해버려 현대인들에겐 미래를 경고하는 자연의 소리는 아예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다.
이기영 호서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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