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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28 20:53 수정 : 2005.03.28 20:53

100년 전 1905년에 있었던 일이다. 2월에 일본 시마네현이 일방적인 고시로 독도를 현에 편입했다. 7월에는 미국과 일본이 가쓰라-태프트 협정을 맺어 일본은 한국을, 미국은 필리핀을 지배하기로 밀약했다. 9월에는 미국 주도로 포츠머스에서 러-일 전쟁의 종결에 따른 러-일 강화조약을 조인했다. 그 회담에서 일본은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조처는 한국 정부와 합의한 후에 집행한다’는 내용의 결의를 관철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한국 정부의 동의를 얻으면 주권도 침해할 수 있다고 허락한 셈이다. 그리고 11월, 일본은 을사늑약을 체결해 보호라는 미명 아래 외교권을 빼앗아갔다.

이 조약이 조인된 뒤 고종 황제는 비밀리에 미국에 “총칼의 위협 아래 체결된 조약이므로 무효”라는 내용의 호소문을 보냈다. 그러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포츠머스 조약을 들먹이며 “한국은 독립국으로 존속할 수 있음에도 자신이 그 조약을 강력히 실행할 능력이 없었다”며 “자신의 방어를 위해 한번도 상대방에게 타격을 준 적이 없는 만큼 한국인을 그다지 존경하지 않는다”는 냉정한 태도를 보였다.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당해도 싸다는 식이었다.

그 뒤 고종은 국권을 빼앗긴 통절한 상황을 국제사회에 호소하기 위해 1907년에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다. 그는 이 회의를 주도하는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에게 친서를 보내 협조를 구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을 상대로 대한제국과 만주, 몽골을 맞바꾸는 비밀협상을 벌이던 러시아는 외교권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 대표의 참석을 막았으며, 밀사 파견 사실을 일본에 흘렸다. 이 사건으로 고종은 ‘선전포고’ 협박을 당한 끝에 결국 퇴위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2005년. 일본은 다시 ‘독도의 날’을 제정해 침탈야욕을 드러냈다. 마치 도적이 수십년 노략질한 장물을 다 토해놓지 않고 일부를 남겨 내것이라며 억지를 부리는 격이다. 미국은 51년 일본에 대한 전후처리를 규정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하는 자리에 일본의 방해 탓에 우리가 52개 협상 주체국에 포함되지 못함으로써 꼬인 문제임을 알면서도 애써 중립을 지키고 있다.

이즈음의 국제정세 또한 100여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동북아에서는 지금 중국의 군사강국 부상과 이에 대한 미·일의 잠재적 위협세력 규정, 대만문제를 둘러싼 미-중 대립, 테러와 북핵문제를 계기로 한 미-일 군사동맹 강화, 독도 영유권 분쟁을 둘러싼 한-일 갈등,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 시도 등이 현안이 돼 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파워게임으로 점차 동아시아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다만 그때와 사뭇 다른 것이 한가지 있다. 100년 전의 약소국 한국이 자주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할말은 할 것이고,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분쟁에 말리지 않을 것이며, 동북아의 균형자 구실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주권국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앞으로 예상되는 동북아의 소용돌이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변화요, 신사고다. 반도라는 지정학적으로나, 중국과 미국으로 대표되는 동양과 서양 문화 양쪽에 두루 통하는 위상에서 균형자를 자처할 만도 하다. 남에게 ‘타격을 준 적이 없는’ 평화적인 천성도 장점이다.

중국 네티즌들은 한국의 이런 높은 기상이 부럽다고 했다. 이런 목소리가 그만큼 국력이 커진 데서 나오는 자신감의 발로라는 측면에서도 고무적이다. 그러나 아직은 주권의식에서 대통령만 독불장군이 아닌가 여겨질 정도로 턱없이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번 미국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가 외교 의전에 맞지 않게 휴일에 대통령을 방문한 경우도 하나의 사례다. 우리 외교관들부터 이를 당연히 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긍과 자존을 키워야 한다.

해방 직후 항간에는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 속지 말고, 일본놈 일어나고, 되놈은 되나오니 조선사람은 조심하라”는 말이 유포됐다. 100년 전이나 50년 전이나 열강의 욕심과 계산은 그대로다. 어느 때보다 역사의식이 중요한 이유다. 격변하는 세계정세를 냉철하게 꿰뚫어 이를 적극적으로 국익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줏대 있는 외교력과 자강의 노력이 절실하다.


조상기 논설위원 tum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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