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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장마 / 김지석

등록 2007-07-01 17:55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 논설위원
유레카
“밭에서 완두를 거두어들이고 난 바로 그 이튿날부터 시작된 비가 며칠이고 계속해서 내렸다. 비는 분말처럼 몽근 알갱이가 되고, 때로는 금방 보꾹이라도 뚫고 쏟아져 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수시로 변덕을 부리면서 칠흑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 ‘한국적 리얼리즘의 적자’로 평가받는 윤흥길의 중편소설 〈장마〉(1973)는 이렇게 시작한다. 장맛비가 만들어내는 음울한 분위기가 손에 잡히는 것 같다. “어쩌다 한나절씩 빗발을 긋는 것으로 하늘은 잠시 선심을 쓰는 척”하다가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는 듯이 악의에 찬 빗줄기를 주룩주룩 흘리곤” 하는 게 바로 장마다.

장마는 한대성 오호츠크해기단과 아열대성 북태평양기단 등 큰 공기덩어리들이 비슷한 힘으로 정체전선을 형성할 때 발생한다. 대개 6월 하순께 시작해 7월 하순이면 끝난다. 집중호우가 내리는 장마는 ‘양성장마’, 오랫동안 계속되는 장마는 ‘음성장마’이고, 비가 아주 적게 오면 ‘마른장마’가 된다.

‘장마’라는 말은 ‘길다’(長)는 뜻의 ‘?棹?과 물의 옛말로 비를 의미하는 ‘맣’이 합쳐져 만들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장마의 옛말인 ‘오란비’도 같은 뜻이다. 중국에선 양쯔강 상류 지역의 매실이 노랗게 익어갈 때 내리는 비라는 뜻에서 ‘메이위’(梅雨)라고 한다. 일본에선 같은 한자를 ‘바이우’로 발음한다. 중국말 ‘메이’에는 곰팡이라는 뜻도 있어 장마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장마〉는 한집에 사는 외할머니와 친할머니를 통해, 한국전쟁이 빚어낸 좌우 이념 갈등을 그린다. 두 할머니는 내내 반목하다가 장마 끝 무렵에 화해한다. ‘마음의 장마’가 함께 걷힌 셈이다.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라는 소설 끝 문장은 그래서 더 실감난다. 올해 장마가 지나갈 때쯤이면, 대선을 앞두고 볼썽사납게 이어지는 정쟁도 조금이나마 가라앉을지 모르겠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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