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순 대기자
김효순 칼럼
<냉전-새로운 역사>는 미국의 역사학자 존 루이스 개디스가 2005년에 낸 최신 저서다. 1970년대 초반부터 냉전에 관한 전문 연구서를 여러 권 낸 개디스 교수는 새 책을 쓰게 된 이유를 서문에서 간략하게 밝히고 있다. 현재 예일대 로버트 러벳 역사 석좌교수로 있는 그는 해마다 가을 학기에 냉전사를 강의하는데, 수강생 대부분이 냉전시기의 사건들을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현재의 재학생들에게는 냉전 초기 미국과 소련의 지도자 트루먼이나 스탈린은 말할 것도 없고, 80년대의 주역인 레이건이나 고르바초프조차, 나폴레옹이나 시저 또는 알렉산더 대왕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냉전시대의 사건들을 전혀 현재의 일로 기억하지 못하는 신세대를 위해 이전의 저서들에 비해 압축된 냉전 통사를 썼다고 했다.
냉전을 규정짓는 특징의 하나로 오래도록 통용됐던 설명은 미국과 소련 군인이 직접 교전을 벌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밀문서 공개로 50년대 초반의 한국전쟁 때 미국과 소련의 전투기가 한반도 상공에서 공중전을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소련은 참전 사실을 극비에 부쳤고, 미국도 당시 소련 조종사의 존재를 알았지만 공개하지 않아 대외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일이다.
권력을 위임받은 집행자들이 의회·언론·국민의 눈을 속여 가며 자의적으로 집행했던 정책 결정의 알맹이와 이면이 뒤늦게나마 기밀문서 공개로 밝혀지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결정의 내용을 은폐하거나 허위 설명을 했던 집권자나 공무 담당자들에게 직접 책임추궁을 하는 것은 일단 접어놓더라도, 언젠가는 진상이 드러난다는 것이 제도적으로 확립되면 권력의 정보 조작과 왜곡· 남용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일정기간이 경과한 뒤 기밀문서 공개를 강제하는 것은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서도 아주 긴요한 일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정보공개 쪽에서 한참 뒤져 있다. 특히 ‘밀교문화의 총본산’으로 일컬어지는 외무성이 아주 심하다. 외무성은 쟁점이 됐던 주요 협정이나 교섭사항 관련 문서를 거의 공개하지 않는다. 65년의 한-일 협정이나 72년의 오키나와 반환 등에 대한 자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해마다 여름방학이 되면 일본의 학자나 연구자들은 미국의 정부공문서관으로 몰려 가 자료뭉치에 파묻혀 씨름을 한다.
오키나와 반환과 관련해 일본이 미국 핵무기 철수, 미국 자산 계승, 일본인 노무자 인건비 증가 명목으로 공식으로 부담하는 액수는 3억2천만달러로 발표됐다. 그러나 기밀문서 공개로 애초 미국 부담 몫이었던 군용지 복원 보상비와 <미국의 소리방송> 이전비 2천만달러가 일본의 대납 형식으로 이 액수에 포함돼 계상된 것이 드러났다. 게다가 일본이 엔-달러 교환에 따라 미연방준비은행에 1억2천만달러 공여, 기지 이전과 개량비로 6500만달러, 일본인 노무자의 사회보장 지출비로 3천만달러 등을 극비리에 별도로 지급했던 것도 밝혀졌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런 밀약의 존재가 미국 공문서로 입증돼도 완강히 부인하며 버틴다.
73년의 김대중 납치사건을 그냥 덮기로 한 정치적 타결에 대해서도 한국이 관련 외교문서를 공개한 반면, 일본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국정원 과거사 진상규명위의 활동을 두고도 쓸데없는 잡음만 일으킬 수 있다며 달갑지 않다는 감정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우리가 30여년 전의 사건조차 은폐의 장막을 걷어내지 못한다면 그보다 전에 있었던 수많은 비리·의혹 사건의 진상이 과연 밝혀질 수 있을까?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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