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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철이 엄마’ / 손준현

등록 2007-07-09 18:01

유레카
골목은 설렌다. 동전 몇 닢이면 짜 먹는 얼음과자나 바스락거리는 스낵을 살 수 있다. 고사리손이 쥔 동전은 골목 어귀 ‘철이 엄마’의 가게에서 주전부리 상품으로 바뀐다. 구구단을 외기도 전에, 화폐가 등가의 구매력임을 깨닫는다. 구멍가게는 서너 살 코흘리개가 처음으로 시장경제와 만나는 장소다. 소비행위는 구체적이다. 코흘리개가 어른으로 몸을 바꾼다. 그 많던 ‘철이 엄마’는 다 어디로 갔을까. 살아남은 가게들은 ‘마트’를 참칭하며 선진 유통문화에 버겁게 저항한다.

승용차로 십분 거리에 대형 할인매장이 있다. 쇼핑 카트를 미는 소비공화국. 시민은 상품 앞에 평등하다. 제비처럼 잘 우는 딸아이가 시식코너에 정신을 내줄 때, 시민은 상품과 상품의 아우라를 음미한다. 아빠와 엄마와 아이가 함께 즐기는 평등의 소비공간. 카트에 실린 상품이 핸드 스캐너를 든 계산원의 손을 거친다. 그 디지털 기호들 속에서 아이는 값을 가늠할 수 없다. 신용카드를 긁기만 하면 상품을 거저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이에게 소비행위는 신비화된다.

대형 할인매장에서는 판매원, 계산원, 파견 노동자들이 일한다. 놀이공원의 안내원 같은 그들은 그러나 상품의 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노동은 신비화된다. 그 많던 ‘철이 엄마’와 ‘철이’도 그곳에서 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만날지 모른다. 그러나 스캔을 거치지 않은 익명의 바코드처럼 무심히 서로를 지나칠지도 모른다. 비정규직법 시행 열흘도 안 돼, 기업들은 차별시정을 회피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외주화하고 대량해고하고 있다. 홈에버 등 이랜드그룹 대형 할인매장에서 특히 더 불거졌다. 윤리적 소비자란 말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기업의 환경·노동 분야에 대한 사회적 평판에 따라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이들이다. 지금,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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