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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55 권하는 사회 / 남승희

등록 2007-07-11 18:42수정 2007-07-12 18:15

남승희/문화비평가
남승희/문화비평가
기고
심상정 의원이 아주 참신한 대선 공약을 내놓았다. 이른바 ‘큰 옷 제작 의무화’다. 모든 여성들이 몸에 맞는 옷을 살 수 있게 하자는, ‘55 권하는 사회’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자 치료책이다. 이상하게도 한국에서 젊은 여성이 옷을 사려고 하면 대개 55 크기밖에 없고 백화점이나 가야 66도 있다. 게다가 요즘엔 황당한 44 열풍으로 66마저 밀려나고 있는 형편이다.

옷은 잘 맞아야 사람을 아름답고 돋보이게 할 수 있다. 잘 맞는다는 것은 크기와 취향 모두를 말한다. 자기에게 크거나 꽉 끼는 옷을 입는다면 정말이지 맵시가 나지 않는 건 상식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체격이 다른 만큼 옷의 크기도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남성복은 대개 3개 이상의 크기가 있으며 다른 나라의 여성복 크기는 더 세분화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데 어떻게 키가 큰 요즘 여성들이 55를 입을 수 있을까? 방법은 한 가지, 피나는 노력으로 날씬 또 날씬하게 되는 것이다. 아니라면 비싼 백화점 66을 입어야한다. 170㎝를 넘는다면 두 가지가 다 필수겠다.

왜 일반 여성이 모델 수준으로 날씬하지 않으면 자기가 입고 싶은 옷도 못 입게 되어 버렸을까? 20년 전만 해도 분명 3가지 크기는 기본이었던 한국의 여성복이 지금처럼 되어버린 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잘 나가는 여성의류업체에서 ‘날씬하고 잘 나가는’ 여성들만이 자기 브랜드를 입을 수 있도록 크기를 제한한다. 둘째, 한국 여성들 자체가 원체 날씬한 편이다. 그래서 셋째, 한국의 싹쓸이 문화와 결합하여 55 크기만 만들어 팔아도 대략 장사가 되니 나머지는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는 것이다. 외모지상주의 역시 싹쓸이 문화의 지원을 받아 심각한 지경을 자랑한다. 넷째, 여성들은 이런 문제에 혼자서 대처해야만 했고, 옷이 좀 안 맞아도 그저 수선해 입거나 낀 채로 입거나 혹은 못 입거나, 아니면 날씬하지 못한 자기 몸을 탓하며 다이어트를 택했다. 사회적으로 더 ‘중요한 문제’들에 비하면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니까, 여자들 꾸미는 일일 뿐이니까.

여성복 크기의 문제는 단지 옷을 사기 불편한 일부 여성의 문제가 아니다. 55 권하는 사회 속에서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여성의 자아존중감과 복지권의 문제라고 본다. 단지 55 크기가 안 들어간다는 이유로 비만은커녕 살찐 편도 아닌 정상적인 체형의 여성들이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자아존중감이 위축되고 건강에 나쁜 잘못된 다이어트의 길로 빠지고 있다. 특히 나이어린 여성들일수록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주관이 뚜렷하지 못해 사회적 압박에 취약하다.

자아가 건강하게 서지 못하면 인생이 행복하지 못하다. 현대사회에서 여성 특히 젊은 여성의 자아존중감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자기 외모에 대한 느낌이라는 점은 그 어떤 이론으로 격파하려고 해도 부정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마다 조건도 욕심도 다르지만 타고난 조건만이 다가 아니고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므로 원칙적으로는 모두 행복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그 노력 중 가장 간단한 방법인 자기 취향과 크기에 만족하는 옷을 입는 것이 다수 여성들에게 심히 제약되어 있으니 이것은 기본 복지권의 침해다.

여성복 전체를 갑자기 바꿀 것을 주문하는 것이 아니다. 업체의 사정을 고려하고 여성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몇년간 단계적으로 실행하자. 3가지 크기를 의무화한 뒤 더 확대하거나, 고가 시장부터 차등적용하는 방법, 개선 업체에 지원을 하는 방법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여성부에서도 이 사안을 적극 검토하고 협력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남승희/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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