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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2007년 여름 그리고 북한 / 강태호

등록 2007-07-12 17:20

강태호/남북관계 전문기자
강태호/남북관계 전문기자
한겨레프리즘
지난해 여름 한반도는 벼랑 끝으로 가파르게 내몰리고 있었다. 꼭 1년 전이다. 멀고도 아득해 보인다.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처럼 말하면 “그 해 여름, 갈 수 없는 길과 가야 하는 길은 포개져 있었다.” 북한은 갈 수 없는 길, 가서는 안 되는 길로 갔다. 그냥 벼랑 끝이 아니라 벼랑 끝의 끝까지 몰아갔다. 급박하고 위험했다.

미국 동부시각으로 7월4일 오후(한국시각 7월5일 새벽 3시32분) 깃대령에서 첫 미사일이 발사됐다. 미국 독립기념일을 겨냥했다. 문제의 대포동2는 새벽 5시에 발사됐다. 그날 오후까지 모두 7발이 동해로 발사됐다. 미국 언론이 대포동2가 발사대에 장착됐다는 정보를 공개한 건 6월12일이었다. 6월 말이 되면서 관측이 오락가락했으나 헛된 기대였다. 7월15일 미·일 주도의 미사일 발사 규탄 안보리 결의는 만장일치였다. 중·러의 지지로 북한의 고립은 두드러졌다. 불과 하루 뒤인 16일 북한은 외무성 성명에서 이를 ‘날강도적 논리’라며 깔아뭉갰다. 오히려 ‘보다 강경한 물리적 행동’을 경고했다.

7월 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아세안지역포럼(ARF)은 외교가 무기력하다는 걸 보여줬을 뿐이다. 8월 중순 미국 <에이비시>(ABC) 방송은 조지 부시 대통령이 길주군 풍계리에서의 케이블 하역작업에 관한 정보를 보고받았다고 전했다. 핵실험을 위한 마지막 수순이었다. 9월12일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도 북한의 다음 행동을 막지 못했다. 10월9일 오전 10시35분33초. 강원도 고성군 간성지진관측소를 시작으로 진도 3.58의 인공지진파가 감지됐다. 한반도 최초의 핵실험이었다.

지금 우리는 그 길을 거슬러 거꾸로 가고 있다. 8월 초 아세안지역포럼, 6자 외무장관 회담, 9월의 한-미 정상회담 등 외교일정도 지난해와 비슷하다. 핵 무기화가 아니라 핵 폐기의 길이다. 극적인 반전이다. <남한산성>을 빗대 말하면 북한은 병자호란 때 삼전도에서 칸 앞에 머리를 조아린 인조와 달랐다. 지난 2003년 8월 1차 6자 회담을 앞두고 당시 리처드 아미티지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이렇게 평했다. “그는 여러가지로 묘사될 수 있겠지만 지난 몇 해 동안 약한 패를 쥐고도 게임을 매우 잘해 왔다.” 사실 대포동2는 참담한 실패였고, 핵폭발도 티엔티 1㏏에 못미쳤다. ‘핵무기’라 할 수 없다는 평가마저 있었다. 핵 전문가인 국방연구원의 김태우 박사는 그럼에도 비디에이 문제를 풀고 ‘북한과 미국이 귓속말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면서 ‘북한 핵외교의 성공’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선군정치’의 승리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더는 아니다. 선군정치는 ‘악의 축’에 맞설 때 빛을 발할 뿐이다. 북한·쿠바·중국 등 12개국의 정치 리스크를 분석한 의 저자인 이안 브레머 컬럼비아대 교수는 아예 처음부터 미국의 대북정책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말한다. 폐쇄와 고립으로 체제 안정을 유지해 온 북한에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으면 더 고립시키겠다”고 위협한 것은 ‘살려주겠다’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미국의 적대정책과 그에 따른 고립이 북한의 폐쇄 체제를 정당화했다는 것이다. 이제 한나라당마저도 ‘햇볕’을 얘기하고 있다.

김일성 주석 타계 13돌을 맞은 8일치 <로동신문> 사설에서는 그런 변화가 읽혀진다. 선군 영도를 넘어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서의 일대 변혁’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강태호/남북관계 전문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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