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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기초예술과 문화생태학적 비용 / 이명원

등록 2007-07-18 17:47

이명원/<비평과 전망> 편집주간
이명원/<비평과 전망> 편집주간
야!한국사회
환금성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기초예술은 멸시받아야 마땅하다. 투입된 자금이 가시적인 지표의 형태로 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역시 기초예술은 멸시받아야 마땅하다. 먹고사는 일이야말로 시급한 문제인데, 기초예술에 대한 공적자금의 투입은 사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술가는 고분고분하게 작품이나 만들 것이지, 예술정책에 개입하여 선장 역할을 하려한다면, 그 결과는 결국 우왕좌왕이다. 예술가란 무엇인가. 가난과 고통 속에서 마술적인 작품을 묵묵히 창조하는 자가 아니던가.

이런 투의 속류 예술론이 한국사회를 지배해 온 것은 오래된 일이지만, 최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 위원장 사퇴를 전후로, 다시 시장 종속적 문화공학 관료주의자들이 준동할 기세를 보이고 있다. 초대 예술위 위원장의 리더십 부재와 비상임 예술위원들의 장르 이기주의에 대한 질타, 그리고 자금 회수가 불가능한 복권기금의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의 문제성이 지적되고, 마침내 이런 무책임한 한탄이 메아리친다. “차라리 문예진흥원 시절이 좋았다!”

내 판단에 이번 예술위 사태에서 핵심적인 쟁점이 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기초예술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천박한 상황에 있다는 사실에 대한 성찰이다. 기초예술은 마치 우리가 숨쉬는 공기가 그러한 것처럼 비가시적이어서 그 효용을 경제적 지표로 환원할 수 없긴 하지만, 우리 삶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기초예술은 인간의 문화적 표현 역량과 타인과의 소통 능력을 지속적으로 증대시키는 내적 생산성을 내포하고 있음과 동시에, 이의 문화적·산업적 응용과 확대 형태인 대중문화의 풍부한 분화와 재생산에 기여하는 외화된 생산성의 근거다. 기초예술에 대한 인식의 심화와 확대를 주장하는 논자들이 항용 생태계의 은유를 활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적 개발주의자들에게 공기를 포함한 생태학적 사회비용이 외부화되어 비용으로 산정되지 않는 것처럼, 기초예술의 비가시적 문화생태학적 비용 역시 외부화하려는 유혹은 중단되지 않는다. 그 단적인 사례가 왜 문화예술 지원에 복권기금을 지원하느냐는 투의 일차원적 비난이다. 이 비난 속에는 문화예술이 시민적 삶의 충만함에 기여하는 비가시적인 형태의 내적 비용에 대한 인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장종속적 문화공학 관료주의자들은 기초예술의 비가시적인 생산의 특수성, 문화생태계 복원과 재생산에 투입되는 투자성 재원의 특수성, 이를 통해 가능해지는 시민적 삶의 더디지만 폭넓게 확산되는 삶의 질 고양에 대한 정교한 인식을 회피한다. 그러면서 외치는 것이 경제적 선진화인데, 기초예술에 대한 자신들의 후진적 인식에는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다. 사실 이것이 예술위 사태를 통해 시민과 예술가들이 성찰해야 될 의제의 핵심이다.

이와 함께, 예술위의 경화된 시스템에도 메스를 가할 수밖에 없다. 특히 위원장 사퇴 이후에도 내부적 성찰 없이 갈등을 지속하고 있는 예술위 위원들은 이번 사태에 위원장과 함께 공동의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동시에 예술위 사무처는 물론이고, “차라리 문예진흥원 시절이 좋았다”는 엉뚱한 감정을 토로하는 노동조합 역시, 이번 사태 악화에 자신들이 진정으로 짊어져야 할 책임이 무엇인지를 깊이 숙고해 보아야 한다. 예술단체라고 해서 문제가 없을 수 없다. 지원금 배분에는 민감했던 단체들이 예술위의 파행에 대해서는 왜 단체 차원의 의견개진이 없는가. 책임 있는 대안과 발언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명원/<비평과 전망>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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