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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고양이와 콩깍지 / 여현호

등록 2007-07-26 17:40수정 2007-07-26 23:41

여현호 논설위원
여현호 논설위원
아침햇발
사랑에 빠지면 눈에 콩깍지가 씐다고 한다. 눈앞의 허물도 안 보이고, 탓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콩깍지 씌는 게 사랑 때문만은 아니다. 5년마다 대통령 선거가 돌아오면 많든 적든 우리 국민의 상당수는 콩깍지를 덮어쓴다. 그래서 지지하는 후보의 허물이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그가 나중에 좌회전 깜빡이에 우회전을 하리라거나 그의 실세 아들이 선무당 짓을 하리라는 것은 표를 찍을 땐 떠올리지 못한다. 되짚어 보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경고나 조짐은 미약하긴 해도 분명히 있었다. 콩깍지 때문에 큰 문제로 여기지 않고 흘려 버렸을 뿐이다.

이번 대선도 예외는 아니다. 자신의 눈에 콩깍지가 씐 것도 모자라 다른 이들에게 콩깍지를 덮어쓰라고 권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니, 오히려 이전보다 더한 편이다. 예컨대, 아예 허물을 찾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한나라당의 경선후보 검증은 ‘적전 분열’을 불러올 뿐이니 당장 그만두라고 질타하는 이들이 그렇다. 정권교체의 열망에 지나치게 들뜬 탓일 게다. 허물보다는 그 허물이 들춰진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적법절차’를 강조한다는 점에선 옳은 얘기지만, 정작 중요한 실체적 진실엔 눈을 감아야 한다는 묘한 논리로 이어진다.

언론을 통해 이런 주장을 접하는 국민도 콩깍지에 씌어 있을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한나라당 지지가 절대 다수인 대구·경북의 40대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겨레>가 지난 11일 표적집단 심층좌담을 한 결과를 보면 그렇다. 요즘 검증 공방의 핵심인 이명박 한나라당 경선후보의 부동산 관련 의혹 제기에 대해,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였다. 개발정보 없이는 그렇게 땅 많이 사는 사람 없다고 단언하는 이도 있었다. 세상사 겪을 만큼 겪은 불혹의 40대에게 콩깍지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은 “그런 정도는 용납할 수 있다”고 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이 후보가 “뭔가 해낼 것 같아서”란 답이 나왔다. 과거 ‘사소한’ 잘못이 있더라도 경제를 살리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이건 콩깍지와는 조금 다르다. 굳이 찾자면, ‘흰고양이든 검은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덩샤오핑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에 가깝다. 덩샤오핑이 1960년대 초에 이어 70년대 말 다시 이 말을 했을 때의 ‘쥐’는 경제발전을, 희고 검은 ‘고양이’는 전(專)의 실용과 홍(紅)의 이념을 상징했다. 오늘 여기에 맞춰보면, 쥐는 경제발전을, 희고 검은 고양이는 과거 허물이 있건 없건 이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을 뜻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에 대해선, 몇가지 짚어야 할 게 있다. 우선, 과거의 허물이 과연 ‘사소한’ 것이냐는 점이다. 지금 이 후보에게 제기되는 의혹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공직자로서의 윤리나 도덕성뿐 아니라 형사처벌 문제까지 생길 수 있다. 개발시대의 일 아니냐는 변호도 있지만, 몇몇 의혹은 불과 몇 해 전의 것들이다. 험하게 말해, 고양이의 색깔이 아니라 도둑고양이냐 아니냐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쥐’를 실제로 잘 잡느냐도 따져봐야 한다. 겉모습만 보고 덜컥 집에 들였다가, 쥐를 잡기는커녕 장독만 깰 수도 있다. 그렇게 장독을 깬 게 10년 전, 외환위기였다.

물론, 나중 일을 지금 알 수는 없는 법이다. “그나마 그 중 나은 사람”을 찾아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어떤 문제를 지니고 있는지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미리 대비를 할 수 있다. 지난 몇차례처럼 뒤늦게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말아야 할 게 아닌가.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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