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30 19:27
수정 : 2005.03.30 19:27
지난 주말에는 전남 강진에 있는 다산 정약용선생의 유적지와 보성에 있는 경기도 광주 이씨 문중 강골마을을 다녀왔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설레임으로 가득한 여행이었다.
강진까지는 5시간이 더 걸렸다. 그러나 소란한 도시를 떠나는 기쁨에 피곤한 줄도 몰랐다.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을 가뿐히 올라 갈 수 있었다. 다산초당 마루에 걸터앉아, 지역문화해설사의 옛이야기를 심취해 듣다 보니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난 서어나무숲 속 오솔길을 거닐 때에는 나는 이미 차를 구하러 백련사로 달려가던 다산이 되어 있었다. 고개 마루턱에서 내려다보이는 숲으로 둘러싸인 백련사는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오른쪽 아래로 저만치 보이는 강진 앞바다는 유배왔던 다산의 외로움을 알려주려는 듯 머나먼 이국에 온 느낌을 주었다. 백련사에서는 다산이 즐겨 마시던 그 옛 차를 달여 마시며 오랜만에 산사의 옛 정취에 흠뻑 젖어볼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빗속에 찾아간 강골마을의 전통 한옥들은 규모가 아주 크고, 아름다운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백여년전 우리나라 지방 부호의 가세와 기품을 짐작할 수 있었다. 높은 솟을 대문이 인상적이었고, 커다란 행랑채, 품위있는 사랑채와 사랑마당, 우아한 안채와 안마당이 어우러진 전통가옥들은 우리 농촌에 산재해 있는 문화유산의 엄청난 잠재력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열화정이었다. 역사와 자연이 잘 어우러진 곳이었다. 전통 한옥들 사이로 난 포석 깔린 오솔길을 걸을 때는 독일 어딘가 고성 마을의 산책로를 걷는 느낌이었다. 그 길을 제법 걸어가니 나지막한 언덕이 나오고 그 위 숲 깊숙한 한가운데 150여년전에 이제 이진만 선생이 후진양성을 위해 지었다는 열화정의 ㄱ자형 누마루집과 일각대문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은근함과 그 아름다움은 담양의 소쇄원에 못지 않았다. 일각대문 안에 들어서니, 역시 ㄱ자형 연못이 있었는데 주변의 동백꽃, 대나무 등과 잘 어울려 우리나라 남도의 전통적 한옥조경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 우리일행을 현지까지 마중 나온 군수께서는 걱정이 많으셨다. 그리 넉넉치 못한 군재정에도 불구하고 연간 1억여원을 들여가며 문화유산들을 지켜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사람이 살지 않다 보니 아주 힘이 든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농촌에서 사람들이 사라진 것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40여년간 전국 4만5천여 농촌마을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이제 20%도 남지 않았다. 요즘 우리 농촌마을에는 60살 이상의 고령인구가 50%를 넘은 마을이 상당수다. 이대로 가면 10년 안에 우리나라 농지의 10% 이상이 추가로 주인 없는 폐농으로 버려질 전망이다.
지난 10여년간 농촌을 살리기 위해 수많은 전문가, 단체가 정부와 함께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수많은 농촌이 황폐화 길로 이미 들어서 있고, 상당수 농민이 빚더미에 올라앉아있다. 급격한 인구감소와 고령화 추세 속에서 우리나라 농민, 농업 그리고 농촌은 이제 붕괴의 내리막길로 달려가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농업개방이 확대될 때, 우리나라 농촌과 농업은 정말 풍전등화 신세가 되고, 수천년 대대로 일궈온 농경문화는 농촌붕괴와 함께 사라져버릴 운명이 되었다.
이젠,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할 때이다. 이제, 농촌을 지켜야 할 사람은 더 이상, 농민이나 농업단체나 농림부만이 아니다. 전국민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도시민이 나서야 한다. 범국민적으로 우리 농촌의 아름다운 자연유산을 수천년 전래되어온 농촌문화유산과 함께 지켜나가기 위한 농산촌 트러스트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농지은행이 탄생되고, 도시 청년들에 의한 농촌문화연구 및 농촌문화지킴이 운동이 확산되어야 한다. 도시와 농촌을 잇는 1사 10촌 돕기 운동과 1가 5촌 명예군민 되기 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 폐쇄된 농촌을 열리게 하고, 도시의 청년과 은퇴자들이 그들의 꿈과 열정과 경제력을 농촌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지원체계가 조성되어야 한다. 농촌의 아름다운 문화·자연유산이 도시민들의 문화·건강수요와 맞닿을때, 이 땅에 다시 상생의 문화가 살아나고, 새로운 생명력과 희망이 솟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문국현/유한킴벌리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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