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
유레카
노인이 되면 생활이 지루해진다. 세상만사가 새로울 것도 없고 하루해를 보내기가 따분하기만 하다. 그런데 세월은 뭉텅이로 사라진다. 최근 일과 몇해 전 일이 잘 구분되지도 않는다. 반면 젊은 시절에는 하루가 너무 짧다. 똑 부러지게 하는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바쁘기만 하다.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어 생각해 보면 대개 젊을 때 기억만 넘친다. 길지 않은 청년기가 인생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듯하다. 짧게 느껴졌던 시간은 지나고 보면 길게 인식되고 긴 시간은 짧게 생각되는 ‘시간의 역설’이다.
이는 과학자들이 말하는 ‘무차원 수명의 평등성’과 관련이 있다. 각 동물의 고유한 길이, 곧 특성길이를 특성속도로 나눈 값을 특성시간이라 한다. 예를 들어, 사람의 경우 키(1.7m)를 보행속도(초당 1m)로 나눈 특성시간은 1.7초가 된다. 같은 방식으로 거북의 특성시간은 4초, 쥐는 0.027초, 파리는 0.0015초다. 이들의 실제 수명을 특성시간으로 나누면 무차원 수명이 나오는데, 어느 동물이든 그 값이 10억 남짓으로 거의 같다. 하루살이까지도 그렇다. 결국 모든 동물의 상대수명은 비슷한 셈이다. 사람의 일생을 소년기·청년기·장년기·노년기로 나눠 특성시간을 산출한 뒤 무차원 수명을 계산해 봐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휴가를 가면 처음에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다가 끝날 때쯤에는 하루가 화살처럼 가버린다. 새로운 생활리듬에 몸과 마음이 모두 익숙해져 마음껏 즐길 만큼 되자마자 휴가가 끝나버리는 것이다. 무차원 수명으로 해석하면 처음엔 수명이 짧았다가 나중엔 길어지는 게 된다. 그래서 휴가는 항상 아쉽다. 하지만 대책이 없는 건 아니다. 평상시에 즐거운 일을 많이 만들어 상대수명을 늘리는 것이 그것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제공되는 시간을 길게 만드는 주체는 바로 자신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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