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 논설위원실장
아침햇발
국제유가가 지난주에 다시 사상 최고치에 육박했다. 국내에선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소비자 가격이 사상 최고치로 올랐다. 유류세를 내려 소비자 가격을 완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높아질 듯하다. 언뜻 그럴듯하나,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예컨대 휘발유를 보면 교통세와 교육세, 주행세를 합한 유류세가 소비자 가격의 절반 가량에 이른다. 그렇게 걷힌 세금이 지난해 23조5천억원이었다. 이 세금을 깎으면 어디선가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 누구에게 더 좋을지는 깎아준 유류세만큼을 어디서, 어떻게 거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좀더 근원적으로 보자. 기름에 무거운 세금을 물리는 게 당위성을 지녔던 건, 기름 한방울 안 나는 처지에서 조금이라도 덜 쓰게 하자는 필요성에서였다. 석유시장 상황이 나빠진만큼 그 필요성은 오히려 더 높아졌다.
정부도 그래서 유류세를 내릴 수 없다고 버틴다. 개인적으로 정부 입장이 옳다고 본다. 그런데 이어지는 정부의 자세가 문제다. 소비를 억제해야 한다면서도, 한편으론 정유회사를 압박해 기름값을 내리게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그의 ‘정책적 짝’인 조원동 재경부 차관보가 앞장서고 있다. 자가당착인데, 게다가 그 논거가 정석과 거리가 멀다. 그 중 하나는, 국내 기름값을 휘발유나 등유 등 국제 제품가격이 아니라 원유가에 연동시키도록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 정유시설 부족으로 국제 석유시장에서는 원유가에 견줘 제품값이 강세나, 국내는 정유시설에 여유가 있으니 사정이 다르다는 논리다. 다음으로 거론되는 게 유통구조다. 운송거리가 먼 대리점에는 정유회사끼리 제품을 교환해 공급하는 오랜 관행이 먼저 도마에 올랐다. 그렇게 줄인 운송비만큼 소비자 가격을 내렸냐는 반문이다.
고유가에도 막대한 이익을 누리는 정유회사들이 마뜩잖으나, 그렇다 해도 정부의 압박 방식은 옳게 비치지 않는다. 1997년 기름값 자율화 때 국내 제품가격을 연동시킨 기준은 원유가였다. 그런데 2001년 제품가격이 상대적을 낮아지자 기준을 국제 제품가격으로 바꿨다. 그게 국제적 정합성에도 맞다는 것이었다. 이제 제품값이 높아지니 다시 원유가로 되돌리자는 것이니 정유회사들이 수긍할 리 없다. 이렇게 기준이 오락가락해서는 정유회사들이 시설에 투자하려 하지도 않게 된다. 투자 대가를 부인하는데 투자할 이유가 없다. 당장은 달콤할지 모르나, 길게 보면 나라경제를 좀먹을 발상이다. 유통구조 문제도 그렇다. 유통구조가 잘못됐으면 국제유가가 어떻건 고쳐야 할 일이지, 가만 있다가 느닷없이 정유회사를 압박하는 여론몰이 도구로 써서는 곤란하다. 사실 기름값 인하 효과도 미지수다. 그러니 정부가 기름값 인하 압력의 화살을 정유회사로 돌리려는 입발림 아니냐는 소리가 나온다.
정유회사를 두둔하는 인상을 줄 수 있음에도 이렇게 따지는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기름값을 내리는 게 우리 경제 처지에선 능사가 아닌데, 소모적 논란이 이어지고 소비자들에게 인하 기대를 과도하게 안겨 줄 수 있어서다. 두번째는 정책당국자들이 기름값 정책에서와 같은 식의 정책을 반복해서는 정책 신뢰를 얻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정부가 여론을 등에 업고 개별가격 결정에 개입하는 것부터 옳지 못할 뿐더러, 기준까지 상황에 따라 바꾸는 건 잘못이다. 아무리 정유회사가 미워도 정부는 정석에 충실한 정책을 펴야 한다. 우리나라 정책의 고질병이 일관성과 원칙 결여 아니었던가. 정유회사들이 부당하게 폭리를 누리는 게 사실이라면, 괜히 어설프게 여론몰이를 하지 말고 세무조사나 불공정행위 조사를 엄정하게 펴 부당이득을 환수하라.
김병수 논설위원실장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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