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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임수혁 심장은 뛰고 있다 / 송호진

등록 2007-08-02 17:35

송호진/스포츠부문 기자
송호진/스포츠부문 기자
한겨레프리즘
지난 월요일. 임수혁 몸에 붉은 열꽃이 돋았다. 배에 구멍을 뚫어 끼운 호스 주변으로 위액이 솟구쳐 고름과 염증이 생긴 탓이다. 예닐곱이 쓰는 좁은 병실 구석으로 급히 옮겨졌다. 내년이면 칠순인 엄마는 막둥이가 애처롭기만 하다. “하필 생일날에 또 입원을 해서….” 아들은 39년 전 이날 4.8㎏으로 태어난 우량아였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3학년 애가 왜 여기 서 있니?”란 말을 듣고 “키 좀 잘라 달라”던 아들이었다. 엄마는 “괜찮니?” “좋아질 거야.” “잘 잤니?” “오늘은 덥구나.” 혼자 묻고 답하는 게 익숙해졌다. 아들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에 들어서곤 했고, 코미디언 이주일 흉내도 곧잘 냈다. 그 아들이 7년 넘게 대답 없이 누워 있다.

병원에선 수술을 받자는데 임수혁은 무슨 힘인지 입원 이틀 만에 고열을 뿌리치고 있었다. 그는 목에 힘을 주고 눈을 크게 떠 ‘좋아졌다’는 모습을 보이더니 스르르 잠이 들었다.

“2~3년, 길어도 6년이면 생을 마감한다고 했어요. 봐요. 몇 년 더 살 것 같죠? 우리 수혁이가 눈을 깜박깜박하는데…. 포기할 수 없잖아요.” 아버지는 흰머리가 많이 늘었다.

2000년 4월18일. 아들이 경기 직전 점심을 먹으러 왔다. “‘오늘 5번 타자로 나올 것 같아요. 타격감이 좋아요. 지난해 연봉 2000만원이 깎였는데 올해는 올려야죠’ 하곤 야구장으로 가더니만….” 정말 그랬다. 시즌 개막 2주째인데 벌써 홈런 3방을 날렸다. 장타율은 무려 7할8푼9리. 국가대표를 지낸 그는 공격적인 포수였다. 야구 시작한 지 7개월여 만에 초등학교 전국대회 타격왕이 됐다. 99년 삼성과 플레이오프 7차전 9회 초 3-5에서 대타로 나와 2점 동점 홈런을 치고 껑충껑충 뛰던 임수혁. 롯데 팬들은 그를 도저히 미워할 수 없었다.

“사고가 나려니까….” 2회 아들이 친 공은 유격수와 3루를 가르는 안타성 타구였다. 엘지 유격수가 호수비로 그 공을 기어코 잡아 던졌다. 그걸 본 임수혁은 살려고 전력질주했다. “너무 빨리 뛰어서인지 1루를 지나쳐 한참을 갔다가 돌아왔는데, 쉴 틈 없이 다음 타자가 초구를 친 거여요. 타구도 1·2루 간을 향하다 보니까 병살을 안 당하려고 2루로 또 열심히 달리더라고요. 호흡이 엉켜버린 거죠.”

잠시 후 그는 2루에서 ‘쿵’ 쓰러졌다. 헬멧이 나뒹굴었다.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박동하는 부정맥을 앓고 있는 줄 본인도 몰랐다. 심장마비. 그는 뇌사상태에 빠졌다.

“임수혁이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임수혁 쳤습니다!” 귀에 이어폰을 꽂아 과거 자신의 경기 중계방송을 반복적으로 듣게 했다. 새까맣게 죽은 뇌는 꼼짝하지 않았다. “처음엔 ‘수혁아, 보이면 눈을 세 번 깜박거려 봐’ 하면 눈을 깜박거려 참 좋아하기도 했는데….” 동공반응이 없으니 실은 보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요. 손뼉을 치면 아이처럼 움찔하고. 자고 나면 기지개를 켜고. 휠체어에 태우면 이놈이 고개를 가누며 오래 버티는 거예요.” 된밥과 고기를 좋아했던 그는 호스를 통해 영양식 죽 500~600㏄만 먹는데도 몸무게 80~90㎏대를 유지해 왔다.


임수혁의 기억은 무동을 태웠던 유치원생 큰아들에 멈춰 있지만, 그 아들 세현이는 아빠 14살 때 키보다 큰 172㎝까지 자랐다. 치료비도 매달 300여만원이 드는 힘겨운 하루하루. 임수혁 엄마는 소망한다. “우리 아들이 깨어나 ‘엄마, 나 뭐 먹고 싶어요’라는 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은 채 2663일째 지독한 싸움을 하고 있다. 팬들은 ‘임수혁, 이제 그만 2루에서 일어나 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부모님은 그의 등번호 20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버리지 않았고, 그래서 아들의 심장은 지금도 쉬지 않고 쿵쿵 뛰고 있다.

송호진/스포츠부문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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