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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언어예절] 짝벗 일컫기 / 최인호

등록 2007-08-02 17:41

언어예절
다른 언어에서도 짝벗(배필) 사이에서 부르는 안정되고 특별한 말은 드물다. 방향 정도나 애칭처럼 쓰이는 말뿐이다.(다링·디어·하니/영어, 아이건·롱롱/중국, 오마에·아나타/일본 …)

본디 부르는 말이 없는 게 자연스럽다고 할지라도, 서로 불러야 할 필요는 많다. 그 대안이 ‘애칭’이다. 실제 애칭을 만들어 쓰는 이도 적잖은 줄 안다. 우선은 자기들끼리 써서 편하게 통하면 된다. 나아가 숱하게 쓰긴 하지만, ‘여보’가 ‘여보시오’를 줄인 말이어서 재미 없다면 다른 말을 찾아 볼 수도 있다. “저(나) 좀 보아요”를 줄인 ‘저보’나 ‘나보’가 더 말맛이 난다면 ‘여보’를 제치고 애용될 수도 있을 터이다. 이쪽은 짝벗 사이 거리만큼 새말 깃발을 꽂을 여지가 많은 셈이다.

부르는 말이 안정되지 않은 만큼 짝벗을 일컫는 말도 다양하다. 남편이 아내를 제삼자 앞에서 “집사람·안사람·내자·마누라·아내·처 …”들로 일컫는다. 어버이나 동격 이상의 어른 앞에서는 ‘어미/에미·어멈, 그이, 그사람, ○○씨 …’들로 듣는이의 격에 따라 일컬음이 달라진다. 아내는 남편을 ‘바깥사람, 바깥양반, 밭사람, 그이 …’로 이른다. 어른 앞에서 ‘아비·애비/아범, ○ 서방 …’들을 써 왔고, 밖에서는 ‘우리 신랑, 저희 남편, 그이, 그사람, ○○씨 …’ 등 듣는이의 격에 맞춘 일컬음이 있다.

이 밖에 “철수야, 어머니는 어디 계시느냐” “자네 오라버니도 올 때가 됐네”처럼 듣는 상대 기준의 호칭이나 걸림말을 받아 쓰는 방식이 제일 흔하고 편하며 무난한 것으로 친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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