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마을
바람은 먼곳에서 태어나는 줄 알았다 태풍의 진로를 거스르는 적도의 안개 낀 바다나 계곡의 경사를 단숨에 내리치는 물보라의 폭포
혹은 사막의 천정, 그 적막의 장엄
아랫목에 죽은 당신을 누이고 윗목까지 밀려나 방문 틈에 코를 대고 잔 날 알았다
달 뜬 밖은 감잎 한 장도 박힌 듯 멈춘 수묵의 밤 소지 한 장도 밀어넣지 못할 문틈에서 바람이 살아나고 있었다 고 고 고 좁은 틈에서 달빛과 살내가 섞이느라 바람을 만들고 있었다
육체의 틈 혹은 마음의 금
그날부터 한길 복판에서 간절한 이름 크게 한번 외쳐 보지도 못한 몸에서도 쿵쿵 바람이 쏟아져나왔다 나와 나 아닌 것 삶과 삶 아닌 것이 섞이느라 명치끝이 가늘게 번져 있었다
-시집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창비)에서
■ 신 용 목
1974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2000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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