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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분단의 언어들-납치와 납북 / 강태호

등록 2007-08-07 17:52수정 2007-08-07 17:55

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
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
한겨레프리즘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이다. 말 속에 그 시대와 현실 삶이 들어 있다는 뜻일 것이다. 탈레반은 아프간의 언어다. 테러라는 이미지가 각인돼 있다. 그러나 정작 그 뜻은 학생조직이다. 전통 이슬람학교(마드라사)의 학생이라는 뜻의 탈레브 혹은 탈리브에서 나왔다고 한다. 한때 워싱턴의 조지 부시 행정부 일각에서 청와대에 들어간 일부 386 인사들의 대미인식을 공격하며 탈레반이라고 했다는데, 학생 운동권을 연상한다면 영 엉뚱한 호칭은 아닌 듯하다.

이 탈레반이 한국인들을 납치하면서 뉴스의 블랙홀이 됐다. 그 앞에서 다른 것들은 모두 사라졌다. 새로운 것이 뉴스라지만 다른 뉴스들마저 덮어 버렸다. 그래서 그 납치가 아프가니스탄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하려고 한다. 우리에게도 있다. 다만, 납북이라는 다소 익숙한 말로 있을 뿐이다. ‘납북자’ 문제를 꺼내는 건 그들도 ‘납치’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득하고 멀기 때문인가, 생사마저 알 수 없게 된 때문인가, 아니면 인질이 아니고 어찌어찌 하다 그곳에 살게 됐기 때문인가. 납치가 모든 언론의 화두가 된 지금에도 납북자들은 가족들의 아픈 상처로만 남아 있다.

가족들의 헤어짐과 못 만남으로 본다면 그들 또한 다르지 않다. 납북자 가족모임의 최성용 대표는 2004년 5월22일 다른 납북자 가족들과 텔레비전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날 텔레비전에는 평양 방문을 마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납치 일본인 가족 5명과 함께 귀국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그는 납북자 귀환은 물론이고 탈북자들을 돕는 일에도 맨앞에 섰다. 그러기에 이런 경험도 했다. 1975년 납북 당시 천왕호 선원 고명섭씨는 월남전서 갓 돌아온 미혼의 젊은이였다. 30년 만에 초로의 노인이 돼서 선양 한국총영사관에까지 들어온 그였지만 그는 다시 북으로 돌아가려 했다. 최 대표는 그를 설득했다. 모친과의 전화가 그의 마음을 돌려놨다. 그러나 북에서 결혼한 그에게 남의 모친을 만나는 것은 북의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는 일이었다. 지금 남쪽에 있는 고씨는 너무 고통이 커 정신이상 증세마저 보인다고 한다.

지금은 납북자들 대신 탈북자들이 줄을 잇는 시대다. 그러다 보니 고씨처럼 납북과 탈북이 아니라 탈북·월북·탈북이 이어지는 기막힌 일도 있다. 인민군 국경수비대 출신으로 2003년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이아무개씨는 2004년 3월 북에 남은 형제들을 데려오겠다며 월북했다가 북한 당국에 붙잡혔다. 남쪽 정보를 넘겨준 그는 간첩교육까지 받고 남으로 내려왔다. 다행히 그는 자수했다. 또다른 이아무개씨는 지난 7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탈북 뒤 두 차례나 북에 다녀오면서 북의 아내와 애까지 낳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함북의 한 우산공장 지배인이던 남아무개씨는 1996년 국내에서 결혼까지 했으나 2000년 6월 중국을 거쳐 다시 북에 갔다. 노동당에 가입해 충성맹세를 하고 전처와 재결합했다. 그러나 다시 탈북했다. 그 역시 보안법이 적용됐다. 월북·납북·탈북 등 분단이 낳은 언어들은 이들을 가른다. 그러나 어찌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한꺼풀 벗겨 보면 그 안에는 하나같이 가족들의 헤어짐과 아픔들이 있기 때문이다.

전쟁 이후 정부가 파악한 납북자는 3795명이다. 그 중 3310명(87%)이 귀환했다. 남아있던 485명 가운데 5명은 고명섭씨를 포함해 최근 탈북자로 돌아왔다. 명단으로는 480명이 아직 납북자다. 한반도에서도 납치 문제는 진행형이다.

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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