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31 20:49
수정 : 2005.03.31 20:49
일본 정부는 시마네현 의회의 움직임을 막을 수 없었을까?
일본의 ‘행동하는 양심’으로 꼽히는 하스미 시게히코 전 도쿄대 총장은 한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 답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지금 해서는 안 되는 일에 정부가 왜 말을 못하는지 나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런 점에서 일본 정부는 외교·대외정책을 포기하고 있다.”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과학상이 교과서 학습지도 요령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명기해야 한다고 한 발언은 전력이 있으니 그렇다 치자. 마치무라 노부타카 외상은 다르다. 그가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를 제기한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해 ‘대단히 유감’이라고 한 것은 도발에 가깝게 들린다. 외교를 책임지는 장관이 그것도 잘못된 사실에 근거해 상대국 대통령에게 유감이라고 직격탄을 날리는 것이 오늘의 일본 외교다.
사실 외교를 포기하고 있다는 하스미 전 도쿄대 총장의 말은 일본이 이웃 여러 나라와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현실을 보면 더 실감이 난다. 독도만이 아닌 것이다. 러시아와는 홋카이도 북쪽에 있는 쿠릴열도의 4개 섬(일본은 이것을 ‘북방영토’라고 부른다)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으며, 중국과는 댜오위섬(센카쿠열도)을 놓고 영유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하고는 내 땅이니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고, 중국과는 내 땅이니 못 내놓겠다고 싸우고 있다. 독도 문제도 그렇지만, 다른 두 곳의 분쟁도 러-일 전쟁, 청-일 전쟁 당시로 연원을 거슬러 올라갈 뿐만 아니라 모두 현재 진행형이다. 예컨대 지난 2월9일 일본은 ‘센카쿠열도’의 한 섬에 설치된 등대의 소유권을 정부가 인수했다고 중국에 통보했다. 당연히 중국의 쿵취안 외교부 대변인은 댜오위섬은 중국 영토의 일부이며, 일본의 조처는 불법이고 무효라고 선언했다. 그러자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당당하게 “국가가 응당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독도 문제에서 물러서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안에서는 독도에서 밀리면 러시아,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에서도 밀리게 된다는 논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논리도 가능하다. 일본이 남북한, 중국, 러시아 모두와 싸울 수 있다는 것인가. 과거의 식민지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하면서 모든 이웃과 싸우겠다는 일본의 ‘오만’ 내지 ‘무모함’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외교를 포기하고 있다는 말도 일리가 있지만, 그건 원로 언론인 리영희 선생의 말처럼 일본 뒤에 미국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앞서 <워싱턴포스트>는 아시아 순방에 나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일본의 역할 증대를 염두에 둔 미국의 새로운 아시아 정책을 선보였다고 보도했다. 라이스 장관은 지난 18일 일본의 조치대학 연설에서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 진출을 명백히 지지하는 등 세계 속의 일본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는 미국 행정부가 일본을 중국의 증가하는 지역적 영향력에 대한 견제 국가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미-일 동맹의 세계화를 내건 부시 행정부에 이르러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 공격적 방위개념 도입 등은 아예 ‘정상국’이 되는 당연한 일이 됐다. 북한 핵과 미사일의 위협은 일본이 미국의 미사일방위(MD) 체제를 도입하기 위한 명분이었을 뿐이다. 지난해 12월 일본은 ‘신방위 대강’에서 북한과 함께 중국을 잠재적 위협으로 명시했다. 일본은 이제 평화헌법이라는 마지막 외투마저 벗어던지려 하고 있다.
이쯤 되면 다른 나라의 얘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뉴욕타임스>가 전하고 있는 당신 나라의 유엔주재 대사를 지낸 다니구치 마코토의 말이라도 귀담아 듣기 바란다. 일본이 대미 밀착외교를 지양하고 아시아에 대해 좀더 독자적인 정책을 펴지 않는다면 “일본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는 게 그의 경고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고립될 것이며, 그로 인해 일본의 위상과 경제력이 타격을 입게 된다면 미국에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한테도 버림을 받을 수 있다고 그는 우려하고 있다.
강태호/ 정치부 부장대우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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